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작가 Oct 08. 2023

스물둘 마흔여덟

올여름 장마가 시작되고 일주일이 지난 오늘. 처음 비가 그치고 해가 떴다. 

일주일 만에 보는 해가 여느 때와 같이 뜨겁지만, 오늘의 이 뜨거움도 너무 반갑다. 

노가다의 장마 휴가가 시작되고, 나는 매일아침 차를 몰고 집 근처의 삼매봉 도서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적당히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마스크도 벗고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잡지도 보고 글도 써본다.

점심시간에는 저렴한 가격에 도서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다. 

편한 반바지에 티셔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도서관에서 뽀송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뽀송함이 얼마나 좋은지는 일 년 사계절을 현장에서 일해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한 연도까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 모습이 크게 낯설지 않음을 느낀다.      

25년 전.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해서 맞은 여름방학 때의 내 모습과 같았다. 

많이 앳되 보였을 그때의 모습과는 세월의 흔적이 많이 묻은 지금의 내 모습이 많이 달라 보이겠지만, 

25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나와 크게 다르다고 생각되지 않는 걸까?

‘몸은 변했어도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 머쓱 떠오른다. 

그땐 가방을 메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게 참 괴롭고 하기 싫었던 일 중에 하나였는데, 

50세를 바라보면서 같은 일을 하는 지금의 나는 너무도 행복하다. 

서글프게도 돋보기안경을 써야 책을 읽기 편하고, 

책상에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와 목이 아픈 몸이 되었지만......

서귀포 여름의 짙은 녹음이 한눈에 보이는 도서관 창가에 앉아 

22살 그때의 나를 회상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헛된 생각은 상상하지 않을 나이는 됐고, 

무언가를 꿈꾸며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열정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앞으로 내가 살면서 겪어야 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감 또한 없다.      

25년을 헛되이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돌고 돌아 이리저리 부딪히며 살다 보니 바다가 보이는 이곳에 와있다. 

앞으로 25년의 세월이 흘러 어머니의 나이가 된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때도 서귀포의 녹음은 여전히 푸르고 청량할까.

돌아보면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25년이 흐른 뒤의 나는 그러지 않기를 바라본다. 

흘러가듯 살아가는 인생이었으면 한다.    

이전 06화 집 채 만한 파도는 볼 수 없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