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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작가 Oct 08. 2023

나의 사랑 올레길

벌써 2년 전의 일이 되어 버렸다.

서울에서 15년간 운영해 온 식당을 정리하면서 제주로의 이주를 결심하고, 

가족들이 지낼 집을  구하기 위해 선발대로 혼자 내려온 첫여름.

지푸라기라도 잡아 볼 마음으로 동생의 지인 분 이신 A님을 만났다. 

일자리 걱정과 좋은 집을 구해야 하는 고민 외에도 

낯선 제주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 등을 털어놓았다. 

처음 뵌 분에게 그러한 사정 얘기를 했던걸 보면 그때의 내가 몹시 절박했었나 보다. 

조용히 듣고 계시던 A님은 전혀 동요하지 않으셨고, 

‘올레길을 걸어보면 어떻겠냐고, 서귀포의 여름을 느껴보라'고 권해 주셨다.

‘인생은 짧은 것 같아도 긴 시간이라고, 올레길을 걸어보면 마음의 짐이 많이 줄어들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다급한 마음에 찾아간 A님의 뜻밖의 권고에 나는 무언가에 크게 한방 맞은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생수 한 통을 들고 올레 7코스를 걸었다. 

제주 올레길은 27개 코스. 437km의 길을 따라 제주의 바깥쪽 부분으로 걷는 길이다. 

우도, 가파도, 추자도 세 개의 섬들도 포함되어 있어 

제주의 자연을 가장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길이라 확신한다. 

2년 전 처음 걷기 시작한 올레길 중 서귀포 권역인 14개의 코스를 걷고 있는 현재. 

나는 올레길에 푹 빠져있다.

육지에서도 제주 올레를 걷기 위해 한 두 달 일정으로 내려오는 올레꾼 들도 있고,

 나 같은 도민들은 시간과 날씨가 허락되는 날에 한 번씩 걷는 올레꾼들도 있다.      

등산을 하는 것이 아닌 길을 트레킹 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경험이다. 

특히나 제주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올레길을 걷는 것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한 코스의 길이는 대략 10~19km 사이로 짧게는 3시간에서 길게는 6~7 시간을 걷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 모든 코스를 거의 혼자 걸어서 인지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던 값진 경험이었다. 


계절마다 달라 보이는 제주의 바닷길을 걸을 때면, 바람소리와 파도소리, 

가끔씩 들리는 해녀 삼춘들의 숨비소리 가 내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시골 마을 돌담길을 걸어서 지나며 만나는 시골집들과 삼춘들의 얼굴에서 제주의 진짜 모습을 보았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짙은 녹음의 오름을 오르며 자연이 주는 건강한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으며 

마주치는 사람 없이 2~3시간을 혼자 걷다 보면 이곳은 무인도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가끔씩 만나는 올레꾼들과 ‘수고하십니다’의 웃으며 나누는 짧은 인사 속에서 

이 길이 주는 행복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귤과 바다색의 리본을 따라 걷는 처음 만나는 제주는 언제나 새로웠고, 각기 다른 치유의 시간을 주었다. 

‘처음 걷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걷는 사람은 없다.’는 어느 올레꾼 선배의 말에 격한 공감을 하고 있다. 

올레길을 걸어보지 않은 이들이 한 번씩 물어본다. 

‘걸어본 코스 중에 가장 좋았던 코스가 어디냐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어제 걸었던 코스라고’

올레길은 좋은 풍경을 보면서 단순히 걷기만 하는 길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때 걸었던 길의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모든 것. 올레길은 많은 행복한 기억을 주는 길이다. 

튼튼한 다리와 생수 한통만 있으면 누구나 이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올레길.

나는 그 길을 오래도록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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