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작가 Oct 08. 2023

서귀포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지인들과 저녁을 먹으며 소주 한잔을 하는 날이면, 30분 정도는 걸어서 집으로 오는 걸 즐긴다. 

서울에서의 술자리는 2차로 연결해서 마실 수 있는 집들이 즐비하다.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에 낮인지 밤인지 가늠하기 힘든 밝은 조명들로 밤하늘에 별을 보는 게 쉽지 않았다.      

서귀포의 밤은 고요하고 아름답다. 

낮에는 볼 수 없고, 듣지 못했던 것들이 새롭게 열리는 또 다른 세상이다. 

웬만한 식당들은 8시 전에 모두 문을 닫고, 도로에 차들도  한산해진다. 

밤 9시면 아파트에 불 켜진 집들이 손에 꼽을 정도로 깊은 밤이 되어 버린다. 

불 꺼진 거리를 취기가 살짝 오른 기분으로 걷다 보면 제목을 알 수 없는 연주곡이 들려온다. 

귀뚜라미 소리와 이름을 알지 못하는 풀벌레 소리. 

강약을 조절하며 템포 있게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

가만히 들어보면 저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까지.

이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글로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자연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아파트 입구가 보인다. 

낚시가게를 지키던 백구가 반갑다고 짖어대는 ‘컹컹’ 소리가 너무 커, 백구도 나도 놀란다.     

모두가 잠든  아파트 단지를 지나 맨 끝까지 걸어오면 불 꺼진 우리 집이 보인다.

바다가 보이는 맨 끝동의 꼭대기 층.


얼마 남지 않은 취기를 냉수샤워로 날려 버린다.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들고 달빛이 비치는 베란다로 나가면, 두 번째 빛의 공연이 펼쳐진다.

수평선을 따라 줄 맞춰 떠있는 어선들이 밝히는 바다는 

화려한 조명과 수많은 사람들로 치장했던 한강보다 훨씬 아름답다.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과 밤바다를 수놓는 수많은 집어등의 불빛을 같이 보고 있으면, 

어느 것이 하늘이고, 바다인지 경계선이 없는 광활한 우주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약간의 취기가 남아서일까,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음에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난다. 

무엇을 위해 여태껏 이 아름다운 걸 놓치고 살았을까, 

지금이라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는 후회와 행복의 교차선에서 나오는 몸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수평선을 밝히는 저 많은 어선들 중엔 K군의 배도 있을 텐데 

육지에서 보면 아름다운 빛이지만, 어부들에겐 치열한 삶의 현장인 바다가 멀게만 느껴진다. 

밤하늘의 별들도 끊임없이 핵융합을 일으켜 밝은 빛을 밝혀주고, 

먼바다의 밝은 집어등 아래에서 누군가는 거친 파도와 싸워가며 굵은 땀방울을 흘릴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아름다운 빛들은 모두 누군가의 수고에 의한 것임에 오늘밤은 더욱 빛나 보인다.      

이전 09화 두 바퀴로 달리는 행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