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의 겨울은 계절적 의미보다는 귤 수확기라는 의미가 더 큰 곳이다.
또한 일 년 중 가장 바쁜 철을 의미한다.
삼춘들 얘기를 빌리자면, 귤 수확철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모두 밭에 나가 귤울 딴다 고 할 만큼
주민 모두 귤밭에 나가 귤을 딴다.
귤 철에, 귤 밭을 제외하고 사람을 볼 수 있는 곳은 점심시간에 식당 밖에 없을 정도로,
마을의 집들도 모두 빈집이고, 마트에도, 관공서에도,
오죽하면 병원에도 환자가 적을 정도이니 서귀포의 겨울은 언제나 일손이 부족하다.
여름까진 방울토마토 만하던 귤나무의 열매는 가을이 지나고 10월쯤이 되면
차츰 귤 본연의 색을 띠며 귤나무의 가지가 휘도록 매달려 있다.
초가을까지만 해도 가지의 녹색 잎 색깔과 같은 색이어서 가까이 가지 않으면
귤이 달려 있다는 걸 잘 알지도 못한다.
귤나무는 농부들이 따기 좋게 전정을 자주 해서 키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한 나무에 워낙 많은 열매가 달려서 미리 상품이 되지 못하는 귤을 솎아주어도
수확철에는 가지가 휘도록 노란 귤이 달려있다.
5월에 귤꽃 향에 묻혀 작은 꽃잎의 존재는 잊혀서일까,
귤나무는 꽃이 필 때보다는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을 때가 참 예쁘다.
멀리서도 작은 귤나무에 노란 귤이 풍성하게 달려있는 귤밭을 보면 눈이 시원해진다.
산 중턱에서 해안도로까지 온통 귤색으로 뒤덮인 모습을 귤밭 창고 지붕 위에서 보고 있자면,
이곳이 에덴동산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렇게 예쁜 귤열매도 연말이 다가올수록 아랫동네 바닷가 쪽부터 서서히 사라져 간다.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귤나무에 달린 귤이 점점 없어질수록 왠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관상용으로 심어 놓은 나무가 아니니, 수확철에 따서 출하를 해야
전국의 사람들에게 맛있는 귤을 제공할 수 있지만, 예쁜 귤이 사라지는 게 아쉽다.
눈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많던 예쁜 귤은 그렇게 서서히 따져서
노란색 귤 컨테이너에 담겨 수많은 트럭에 실어져 각지의 새로운 주인들 앞으로 갈 것이다.
내 눈엔 어떤 꽃 보다도 예뻤던 귤들은 이제 어떤 과일 보다도 맛있는 귤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육지에서는 마트에서 사서 먹기만 했던 귤.
이곳. 서귀포에서의 귤은 단순히 돈 주고 사 먹는 과일이 아니다.
접 붙이고, 전정하고, 약을 주고, 솎아 주고, 가꾸는 모든 과정을 4계절 동안 직접 보면서
겨울에 항상 먹는 귤은 이제 나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는 녀석이 되었다.
올해에도 천상의 향기와 어떤 꽃 보다도 예쁜 모습을 보여 주었고,
마지막에는 행복한 맛을 선사한 ‘귤’이란 녀석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귤아 고맙다.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