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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작가 Oct 08. 2023

서귀포를 안고 걸어보자

‘운동하러 간다’, ‘걸으러 간다’는 분명 같은 말은 아니다. 

현장일을 시작하고, 육체노동이 몸에 익숙해질 때부터인가 나는 걷는 것 외에는 따로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 

육지에서 식당일을 할 때. 자주 가진 않았지만 헬스클럽에서 운동도 했었고, 자전거를 타거나 등산도 다녔다. 

반면에 서귀포에 정착하고 꾸준히 현장일을 하면서 나의 유일한 운동은 걷기다.     


쉬는 날에도 기상시간은 평소와 같은 오전 5시 30분.

간단히 씻고, 아침을 먹고, 물통을 챙겨 집을 나선다. 

오늘의 걷기 코스는 집에서 서쪽 방향인 새섬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내려가면 칼 호텔 앞 해안가 올레길 6코스가 나온다. 

칼호텔의 정원은 제주도 전체의 어떤 호텔의 정원보다도 넓고 조경이 훌륭하다. 

잘 깎아놓은 푸른 잔디밭을 누구나 걸을 수 있다.  

멋진 정원을 지나 해안가로 내려가면 문섬과 섶섬이 보이고, 

갯바위를 밟고 조금만 걸어가면 예전 이승만 대통령이 별장으로 썼었던 건물이 나온다. 

지금은 카페로 바뀐 이곳은 서귀포 내에서도 바다 뷰가 멋진 곳으로 유명하다.

얼마 전 넷플렉스에서 방영된 ‘수리남’의 리조트가 이곳이란 것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리조트를 지나 해안길을 걸으면 소정방폭포가 나온다. 정방폭포 보다 작아서 소정방이라 부르겠지만, 

여름이면 서귀포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많이들 물을 맞고 간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소라의 성’이라는 디자인 건물도 볼 수 있다. 

그렇게 6코스 리본을 따라 걷다 보면 ‘정방폭포’와 ‘서복 전시관’, ‘소낭머리’를 차례로 만난다.

서귀포로 관광 오면 한 번쯤 들려보는 코스를 이른 아침 자주 걷다 보면 

관광지보다는 보기 좋은 동네 풍경이 된다. 

아침 요가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 매트를 깔고 수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자구리 공원을 지나 

서귀포 항까지 가면, 전날 나간 어선들이 잡은 생선들을 사고파는 서귀포 위판장에서 

갓 잡은 생선을 싸게 구입할 수도 있다. 

생선 구경을 하고 정박 중인 어선들을 따라 걷다 보면 천지연 폭포가 나온다. 

원래는 입장시간인 오전 9시부터 표를 끊고 입장해야 하지만 아침운동을 나온 부지런한 도민들은 

아무도 없는 천지연 폭포를 혼자서 조용히 감상할 수 있다. 

항상 사람들로 가득한 폭포를 혼자서 보는 것 또한 색다른 경험이다.

무료관람을 마치고 대왕야자나무를 따라 걸으면 오늘의 종착지 새섬이 보인다. 

원래는 무인도였던 작은 섬이 새연교라는 연육교가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의 산책로로 사랑받고 있다.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새연교 중간 부분에 서면 한라산이 눈앞에 들어온다. 

날이 좋으면 할망 얼굴이 보이고, 날이 흐리면 구름에 가려진 한라산을 볼 수 있다. 

바다가 보이는 숲길을 걸어 새섬을 한 바퀴 돌아오면 오늘 아침 걷기 코스가 마무리된다. 

그렇게 왕복 걷는 거리가 10km. 시간으로는 2시간이 더 걸린다. 

매번 걸을 때마다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산책코스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걷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이 길이 있어 너무 감사하다. 

횟수로 따지면 백번 가까이 걸었을 이 길을 오늘 걸어도 행복하다. 

이런 행복들이 있음에 나는 서귀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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