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쥐의 집 구하기

마음 졸인 2달

by 보너

막무가내로 서울에 직장을 구했다.

집이 문제인데, 일단 우리 대학교에는 의대가 서울에 있어서 서울에 인턴을 하거나 교류학생으로 가게 되면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다. 2달에 70 정도였던 것 같다.


기숙사 신청을 하고,

기숙사 입소에 맞추어서 첫 출근을 하기로 하였다.

부랴부랴 짐을 택배로 부치고

나는 크리스마스이브날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때에도 뭔가 내가 서울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기숙사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보일러가 잘 나오는지 확인한 후(나는 추위를 병적으로 타는 남쪽 시골쥐기 때문에!)

옷을 입고 친구들을 보러 갔다.


당시 서울에 놀러 온 친구 하나, 수원에서 일을 하는 친구 하나가 내가 올라왔으니 놀 겸 해서 명동에서 보기로 했었다.


즐겁게 놀고 다시 돌아와서 아직 집에 오지 않은 룸메의 자리를 보고는 침대에 누웠었던 것 같다.

아주 아늑했다.

삐까번쩍한 기숙사가 아니라, 그 기숙사는 좀 아니 아주 오래된 복도형 아파트 같은 공간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주 정겹고 뭐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졸업 전까지 정신없이 살면서 출근하다가,

1개월 이상 회사를 다니면 중기청(중소기업청년대출)을 할 수 있어서 중기청 대출을 위해 뛰었다.


먼저 집을 알아보고, (나는 굉장히 인복이 좋다. 내 친구가 아주 꼼꼼해서 집을 볼 때 엄청 도와줬다.)가 계약을 한 뒤에 가계약서를 가지고 은행에 가서 대출이 가능한지 상담과 심사를 했다. 은행에 필요한 서류들을 회사에서 떼고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네이버에 누군가 자세히 기록해 놓았으니 참고하시길) 그걸 다시 은행에 가져다주고, 한 3번~4번은 왔다 갔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3월. 기숙사 퇴소일과 집에 입주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맞추고 싶었는데, 이전 세입자가 내가 원하는 날짜보다 일주일 뒤에 방을 뺄 수 있다고 했다.


어이쿠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했다.

일단 짐을 모조리 택배로 싸놓고, 기숙사에 맡긴 뒤에 나중에 붙여달라고 부탁드렸는데, 글쎄 기숙사 경비분이 까먹고 그냥 붙여버린 것이다. 부랴부랴 집주인에게 전화하여 짐을 둘 데가 있냐고 물었고, 다행히 층마다 보일러실이 있는데, 그곳에 자리가 좀 있으니 거기에 보관해 두라고 하셨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캐리어를 끌고 일주일 동안 캡슐호텔에서 지냈다.


중간에 공휴일이 껴 있어서 거기서 지내면 뭐 중간에 놀러도 가고 아주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망할. 출근했다. 그 주 7일을 출근을 했던 것 같다. 비척비척 일주일 동안 일도 많고, 잠자리도 너무 불편하고, 또 이삿짐에 대한 신경에 정말 좀비가 따로 없었는데, 그리고 마지막 금요일에는 엄마가 그래도 이사하는데 어디로 이사하는지 집은 잘 구했는지 보기 위해서 올라왔고 엄마를 보자마자 찡해졌다.


하고 싶은 거 쫒아서 이렇게 멀리 왔는데, 개고생은 개고생대로 하고, 특히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보상도 없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어른들(회사 사장님)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어떻게 해 살아가야지 싶어서 엄마와 밥을 먹고 다음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처음 집을 보자마자 말했다.

"잘 구했네 근데 서울 물가 무섭다 어이구 무슨 이 코딱지 만한 게 일억이고."


나는 맞장구치며 말했다.

"그니까 근데 이것도 없어서 난리였다. 엄마. 이 이전에는 정상적인 집이 없었다. 그리고 전세가 일억이라는 게 나는 너무 웃기다."


이런저런 말을 하고

집정리를 하고

밥을 먹고

놀다가 엄마는 버스를 타고 떠났다.

엄마를 배웅해 주면서

솔직히 영화처럼 울지는 않았지만


좀... 음.... 시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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