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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패모 Apr 09. 2023

하얀패모 이갸기 22-언어유희

언어유희


<언어유희>

녀석과 나는 간드러지는 형용사들에 알레르기가 있었다. 하여 늘 투박한 형용사들을 골라 쓰길 즐겼다. 예를 들어 다른 애들이 ‘예쁘다’ 고 할 표현을 우리는 ‘보기 좋다.’ 내지는 ‘관상이 좋다’ 고 했다. 이 외에도 각종 닭살 돋는 여린 언어를 우리는 신중하게 바꿔 표현했다. 우리는 또 과학적 용어의 사용도 이런 범주에서 활용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성 간의 친밀감은 줄여주면서 서로 간의 소속감과 우정은 배가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우리의 이런 우악스럽고 희한한 언어사용에 늘 머리를 흔들었다. 여기에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 


녀석이 묻는다. 

“야, 넌 손등 가죽이(손의 피부가) 왜 그렇게 빤질거려(매끄러워 보여-역자 주)? 한 번 문질러 봐도 돼(만져봐도 돼)?”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한다. 

“그럼 너 같이 시커머니 솥뚜껑 같겠냐(사실 녀석의 손은 남자치고 예쁜 편이었지만)? 여잔 다 이 정도야. 호르몬의 차이지. 네 동생 것도 똑같을 거다. 가서 실컷 문질러 봐.”

“내가 미쳤냐? 어떻게 동생 손을?”

“그럼 남의 동생 건 되냐? 나도 오빠 있거든!”

“뭐래 애가 지금? 넌 네 오빠하고 나하고 막 헷갈리는 거 아냐?”

“사실 보기만 빤질대지 아주 말가죽 같다. 다른 여자애들은 무슨 햇볕에고 알러 지고 뭐고 탈도 잘 나드만 내건 마냥 질기네 그려. 모래에 박박 문질러도 별 탈이 없을 거야. 신께서 주신 그 연약한 호르몬이 내겐 쓸데가 없는 거지.”

“말가죽은 무슨. 핏줄이 다 비치는구만.”

“핏줄이 아니라 힘줄이야! 멍청아.”


녀석이 또 묻는다. 

“야, 넌 머리카락이 왜 그리 광이 나(머리 결이 윤이 나?-역자 주)? 한번 손으로 밀어 봐도 돼(쓰다듬어 봐도 돼)?”

“그럼 너 같이 그렇게 돼지 털 같겠냐? 너처럼 파상모가 아니라 그래. 여잔 다 이 정도야. 호르몬의 차이지. 우리 오빠가 내 머리 쫙 펴서 손가락으로 밀어 보랬더니 비닐같이 미끄럽대. 너도 가서 네 동생 거 밀어 봐.”

“너는 왜 네 오빠한테 머릴 들이대? 너네 남매는 어떨 땐 아주 이상해!”

“남의 동생 머리 문질러 보잔 놈 보단 나아!”

“어유 이걸 그냥!”

“아님 비닐 만져 봐! 그거랑 똑같대! 아님 니 거 길러서 만져보든가!’

“그게 더 변태 같지!”

“싫음 마라!”


또 경쟁하듯 성경을 읽어댄 탓에 성경의 어구를 자주 인용하기도 했다. 

“선생님께 자율학습 빼달라고 교무실 가서 한 판 했는데 안 통하드만.”

“네가 무슨 왕자냐? 선생님들이 네 말 다 들어주셔야 되게?”

“에이, 이 기본 인권조차 없는 대한민국.”

“그래서 어떻게 했어?”

“어떻게 하긴. 내가 뭐 힘이 있냐? 그냥 발에 먼지를 떨고 나왔다.”

“오~ 화 있을진저! 대원외고 교무실이여~”

“환난 날에 소돔과 고모라가 너희보다 견디기 더 쉬우리로다. 아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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