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명분>
나는 녀석이 이성이었기 때문에 녀석과 함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즐거우면서도 참 불편했다. 까딱 잘못하면 우정이 다른 감정으로 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남자라 그런지 그런 문제는 아예 신경을 꺼버린 것 같았다. 때로 녀석의 행동은 나의 성별은 잊어서 하는 것인지 아님 일부러 의식을 해서 그런 것인지 종종 헷갈렸다. 예를 들면 추위를 많이 타서 손가락이 시린 나에게 스스럼없이 지는 열이 많으니 지 손을 잡으라는 거다. 싫다고 하자니 녀석이 친구끼리 어떠냐고 할게 뻔하고 잡자니 내 보수적 신념이 무너지는 난감한 상황은 언제나 있었다. 시작부터 늘 있어왔던 녀석과 나의 모순이었다. 어찌 되었든 녀석은 겨울마다 손가락이 얼어 터지는 내가 불쌍했던지 일단 논쟁을 접고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취해 나의 고통을 덜어주려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녀석은 겨울이 깊어 가면서 자신의 호주머니에 동전의 무게도 늘렸다. 몸에 열이 많은 녀석의 주머니에서 뜨끈뜨끈 하게 데워진 동전은 차디찬 내 손을 녹이는 훌륭한 난로였다. 가방 손잡이도 제 손으로 데워 내 손에 바꿔 쥐게 해 주었고 뜨거운 국물을 사서 손에 쥐어 주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아-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으신 거 같아.”
“왜?’
“내 손은 이렇게 뜨겁고 네 손은 그렇게 차니까.”
“어 정말. 손끝이 터질 거 같다. 이 고통을 너 같은 놈을 죽어도 모를 거다.”
“아파?”
“응. 죽게 아프다.”
“내가 잡아서 금방 따뜻하게 해 줄게 친구끼리 어떠냐. 진짜 나쁜 맘 없거든. 네가 딱해서 그래”
“싫어.’
“아픈 거보다 낫지.”
“아픈 게 나.”
이런 대화를 늘상 하다 보니 녀석도 어느 날부터 진화하기 시작했다. 바로 내가 명분에 약하다는 걸 이용하기 시작한 거다.
“하나님이 너한테 나를 보내 주신 건가 봐. 내가 열이 보통이 넘잖아?”
“어디서 또 감히 하나님을 팔려고 하냐?”
“아니, 내 열이 아까워서. 내가 금방 따뜻하게 해 줄게. 일 분만 내 손 잡으면 금방 녹는다.”
“이 사탄. 물러가라.”
“그럼 네가 책상에 손 올려놔. 내가 덮어 줄게. 손을 잡는 게 아니고 덮는 거지. 그건 괜찮지?”
“잡는 게 아니다?”
내가 녀석의 명분에 관심을 보이자 녀석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래. 날 뚜껑이다 생각하고. 그치?”
“뚜껑?”
“그렇지. 덮으면 뚜껑인 거지 뚜껑이 뭐 별거냐? 이건 동상을 막는 응급조치지 절대 나쁜 의도가 있는 행동이 아닌 거지.”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손끝이 아파 눈물이 찔끔 나오던 나는 녀석의 확실한 명분에 넘어갔다.
“그럼 한 번 해봐.”
“정말? 알았어.”
“......”
“따뜻하지?”
“응.”
“너 손 진짜 차구나......”
“그치? 아주 괴롭다.”
“내가 웬만한 사람들 손 잡아주면 금방 따뜻해지는데 넌 되레 내 손을 식힌다.”
“그렇다니까. 끔찍하지? 전기장판이고 절절 끓는 구들이고 내 손 닿으면 금방 서늘해진다니까?”
“좋은 거야.”
“이게? 왜?”
“예술작품에서 보면 주인공 여자들은 다 손이 차다.”
“그런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서 마리아도 그랬고 오페라 곡 중에도 ‘그대의 찬 손’ 이 있잖아. 여자들은 손이 차야 돼.”
“왜?”
“그래야 남자들이 잡아주지.”
“미친. 그 기분 내자고 여자들이 고생해야 돼?”
“아냐, 아냐. 그건 다 딴 여자들 얘기고 넌 나한테 도움을 주기 위해 찬 거지.”
“도움?”
녀석이 내친김에 명분의 바다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그럼. 내 손이 뜨거우니까 너처럼 찬 손이 필요한 거지. 뜨거운 것도 얼마나 괴로운데. 아-시원하다. 넌 나의 큰 도움이야.”
“그건 좀 낫다. 계집애들이 약한 척하면서 남자들 부려먹는 것처럼 꼴사나운 게 없지.”
“넌 그럴 걱정은 하지도 마. 지금도 네가 널 따듯하게 하는 게 아니라 네가 날 시원하게 해 주는 거라니까?”
“그래. 그럼 이제 그만 도울래.”
“더 도와줘야지.”
“왜?”
“도움을 받는 사람이 계속 필요로 하니까.”
“이젠 손이 미지근해져서 널 도울 수가 없어.”
“어? 이것들이 왜 이러지? 조금 있으면 난 또 열이 올라온다, 너?”
“땀나면 더러워.”
“땀? 이런!”
“이젠 뚜껑 치워.”
“알았어. 이제 손가락 안 아파?”
“응. 근데 내가 물어봐야지. 내가 도와줬잖아. 이제 시원하냐?”
“그럼. 딱 좋아!”
차라리 손을 잡아주지 그랬냐고? 그건 내 생애에서, 아니 세상 마지막 날에나 있을 법한 일이란 걸 녀석은 잘 알고 있었다.
[성돌기]
작은 성이 있습니다.
나는 그 성을 돌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저는 여리고성의 이야기를 압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킨 이야기 말입니다.
저도 6일 간
하루에 한 바퀴씩 돌았습니다.
그리고 7일째
일곱 바퀴를 그 성을 돌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그 성은 꼼짝도 안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기 시작했습니다.
내겐 제사장들도 언약궤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돌았습니다.
소리도 질렀습니다.
수십 년간 나는 돌고 소리쳐 왔습니다.
작은 성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안에 어떤 종족이 사는지 궁금합니다.
오늘도 나는 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