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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패모 Apr 10. 2023

하얀패모 이야기 23-애칭

애칭

<애칭>

나는 내 학생들이 이성 간에 서로 성을 떼고 ‘OO야' 하고 부르는 것이 아직도 어색하다. 내가 중학교 때는 남학생이 여학생의 이름만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성을 떼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둘의 사이가 아주 친밀하다는 것을 나타내니까 말이다. 이름 부르는 것이 뭐가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 어머니께서 항상 처녀시절 친오빠들 외에는 손위 남자들에게 오빠라고 부르신 적이 없다고 하셨다는 말씀을 늘 들어서인지 나는 종종 여자 친구들도 성을 붙여 이름 부르길 더 즐겼다. 하물며 이성과 성을 떼고 이름을 부르는 건 가당찮은 일이었다. 녀석과 할 이야기가 많아지면서 당연히 녀석을 부를 일도 많아졌다. 나는 입에 붙은 대로 녀석을 ’ 반장‘이라고 부르거나 녀석의 성에다 ‘가’ 자를 붙여 불렀다. ‘김가’ 나 ‘이가’ 이런 식으로 부르는 거다. 한편 녀석은 내 이름을 성씨를 붙여 그대로 불러야 했다. 

“야, 우리 이제 성 떼고 이름만 부르자. 졸업도 했는데 우리끼리 반장 부반장 이렇게 부르면 남들이 뭐라고 그러겠냐.”

“지들이 먼저 그렇게 부르드만. 누가 시켰나?”

“아니, 그래도 우리가 그만해야지.”

“좋아. 하지만 성을 그대로 붙여라.”

“우린 끈끈한 동지인데 그건 좀 너무 하지 않냐?”

“왜 또 바가지야?”

“이름을 불러야 진짜 친구지.”
 “난 이 정도 동지애로 만족이니까 그만해라.”

“이름이 뭐라고 저러는지 원.”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모르면 그냥 따라오기나 해.”

그리고 며칠 후 녀석이 독서실에서 먼저 나와 길 가 가로수 밑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야, 가자.”

“......”

“길에서 자냐? 가자고.”

“내 이름 불러주면 깨 주지.”

“그냥 자.”

나는 녀석을 뒤로하고 성큼성큼 걸었다. 

“야, 거기 서. 같이 가! 이 김가야!”

녀석은 그 뒤로 내게 시위하 듯 별명을 붙여 불렀다.

“잘 있었냐, 한 건물에서 밥 먹는 사이?”

“뭐냐 그건 또?”

“친구들이 물어보면 할 말이 없어 그런다. 우리 관계를 한 마디로 표현했다. 됐지? ‘한 건물에서 잠자는 사이’ 도 있다. 됐냐?”

“뭐?”

“왜 맞잖아. 우리가 도서관에서 얼마나 많이 자냐? 너는 2층 나는 3층에서. 한 건물 맞지.”

“자식. 그 긴 말을 어떻게 쓰고 다니냐? 난 상관없다 뭐.”

재미가 들린 녀석은 한동안은 나를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로 부르기도 했고 ‘망부석’이나 외쳐도 되돌아오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로 불렀다. 모두 녀석을 참 외롭게 했던 애칭 아닌 애칭들이다. 쓸쓸한 이 말들을 지금 하나하나 쓰다듬어 보면 녀석이 지금은 아주 많이 사랑받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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