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냉전>
녀석과 말을 섞으면 항상 기분이 나빴음으로 나는 녀석과 마주칠 일은 되도록 삼갔다. 그래서 학기 후반에는 우린 서로 거의 말로 하지 않았고 필요하면 손짓이나 고갯짓, 눈짓으로 서로를 부르고 일을 했다. 우리가 이렇다 보니 우리가 마주할 때 반 분위기는 늘 무거웠고 아이들은 눈치가 빨라져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을 대신했다. 쉬는 시간 선생님께서 반장을 불러 오라 하셔서 녀석이 교실에 없으면 나는 무조건 현관으로 갔다. 나가 보면 녀석은 대개 아이들과 농구를 하고 있었다. 일단 내가 현관에 나가 서있으면 무슨 일인가 싶어 녀석과 함께 농구를 하던 놈들 중 적어도 한 놈은 나를 쳐다본다. 그 놈에게 두어 번 손짓하면 아이들이 녀석에게 알려서 나를 쳐다보게 했다. 그러면 나는 녀석에게 선생님께서 계신 방향만 손짓하면 되었다. 그러면 녀석은 어느 새 말없이 와서 먼저 걷고 있는 나를 쌩하니 추월 해 나보다 먼저 교무실로 갔다. 전교 회의라도 있는 날이면 녀석은 내 책상을 두드려 회의장을 가리키며 먼저 간다는 손짓을 했다.
‘흥! 가든지 말든지! 웬 보고?’
난 아무 대꾸 없이 거칠게 가방을 들쳐 메고 일어나 걸상을 부서져라 집어넣고 다른 문으로 나갔다. 회의장에 가보면 어느 날은 난감하게도 각 반 반장 부반장이 한 책상에 함께 나란히 앉아 있는 날도 있었다. 혼자 한 켠에 앉아있는 녀석의 밉살맞은 얼굴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와 속이 뒤집혔다. 나는 보란 듯 턱턱 걸어 들어가 녀석과 멀리 떨어져 앉았다. 녀석은 불쾌한 얼굴로 마치 ‘여기서 까지 싸울 필요 있냐?’는 듯 내게 나무라는 눈짓을 했다.’ 나는 그런 녀석의 눈짓을 무시하고 회의 내내 그 자리에 앉았다. 다른 반 임원들이 우리를 걱정스레 보고 있는 게 수치스러웠지만 녀석과 나란히 앉을 수는 없었다. 그들의 눈은 녀석과 내게 말하고 있었다.
‘니들이 그러니까 꼴찌를 못 면하지......’
회의가 끝나자 녀석은,
“내 체면이 뭐가 되냐?”
라고 쏘아 붙이는 걸 잊지 않고 쌩허니 먼저 나갔다.
나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외면하며 맞섰다.
‘흥, 부반장이 반장 체면 세워주는 사람이냐? 지가 무슨 대통령인줄 알어, 저건. 아우 그냥 확!’
그런 날이면 분한 나는 친구들과 방과 후 집에 모여 녀석을 씹어 댔고 친구들은 맞장구를 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