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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패모 Apr 10. 2023

하얀패모 이야기 4-선제공격

선제공격

1. <선제공격>

허나 나의 하해와 같은 은총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그 황당한 도전을 시작으로 녀석의 공격은 시작되었다. 일단 녀석은 나의 심기를 자주, 그것도 심하게 긁었다. 나뿐만 아니라 여학생들 전체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일단 녀석은 나나 여학생들과는 도무지 말을 섞지 않았다. 행여 말을 할 때라도 시선도 마주치지 않았고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녀석은 걸음걸이도 재수 없었다. 팔짱을 끼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마치 여학생들과 부딪히면 병에 걸리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여학생들 사이를 조용히 휙휙 지나다니며 늘 나지막하고 짧게 지시하 듯 말을 뱉고 사라졌다. 게다가 녀석이 나를 부를 땐 제대로 부르는 법이 없이 늘 발로 내 의자를 툭툭 치거나 다른 아이들을 시켜 불렀다. 마치 자기 비서를 시켜 부하 직원들을 소집하듯이. 여기까지는 내 쪽에서도 얼마든지 똑같은 보복 가능했고 더러는 나와 비슷한 모습이기도 해서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안들은 용서가 되지 않는 사안들이었다. 예를 들면 보충 수업 때 각 반 임원들이 준비해야 하는 선생님들 음료수 준비를 내게 말도 없이 지 혼자 다 사버린다든가 어떤 일은 자신이 늦게 처리해서 내가 대신하고 있으면 갑자기 휙 나타나서는 ‘부반장이 감히 버릇없이 월권한다’ 고 어린 사람 나무라듯 중얼거리며 일감을 휙 채서 사라져 버리곤 하는 것이다. 나중에 따지면 부반장 주제에 반장이 하는 일을 일일이 다 알 필요가 없는데 쓸데없이 따지고 든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그때까지 임원 생활을 하면서 남자 임원에게 잔소리할 틈을 주던 내가 아니었다. 그런데 어디서 이름도 없던 녀석에게 생전 처음으로 나는 속수무책으로 억울하게 매일 당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 무례한 녀석과 시원하게 한 판 할 기회를 엿보았지만 불행하게도 그 기회는 잘 오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우리 반 남학생들은 전체 일등이고 여학생들은 언제나 꼴찌였는데 그 둘이 얼마나 심한 격차가 났었는지 합쳐도 우린 꼴찌였다. 여학생 대표로서 뭐 면이 서야 할 말이 있을 터인데...... 자존심 강한 나는 속만 앓고 있었고 녀석은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나의 불편한 심기를 종종 돋웠다. 때로는 치사하게도 대놓고 내게 말하기도 했다. 

“여자애들 정말 너무 하지 않냐? 제발 5등이라도 해 보자. 남자만 일등 하면 뭘 하나?”

여학생 대표로서 죽고 싶었다. 

“우리 반 상위권 여학생들은 참 불쌍해요. 얘들은 다른 반에 가면 다 일등이야. 어째 이렇게 몰리게 반이 편성됐냐......”

선생님의 이런 말씀이 있어서 간신히 대표로서 체면 유지를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녀석의 공격은 드셌다. 여학생들이 성적으로 틈이 보이면 여지없이 치고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녀석은 끝내 8년간을 성공적으로 고수해 오던 나의 독재 정책에도 반기를 들었다. 88년 전두환 대통령 임기 후 총선 열기가 달구어지면서 녀석은 이젠 민주화 시대 라나 뭐라나 하며 반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예를 들어 16세 충천하는 에너지들을 주체 못 하고 날뛰는 남학생들을 좀 조용히 시키고 특히나 저질 만화나 언행을 단속해 달라고 여학생 대표의 자격으로 주문을 하자 녀석은 대수롭지 않게 한 마디를 휙 던졌다. 

“야, 우리가 뭔데 그런 걸 얘들에게 요구하냐? 우리에게 정말 그런 권위가 있냐? 난 그렇게 못하겠다. 방년 16세란 말도 있잖냐. 지금 이렇게 날뛰는 게 정상이지 조용히 있으면 우리가 정상일 나이냐? 난 그 기대 자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해. 애들, 좀 시끄럽지만 보기 좋잖아, 활기차고.”

“넌 반장이니까. 반장은 그런 거 하라고 세워 놓은 거야!” 

내가 녀석에게 명분을 던졌다. 

“난 못하겠다. 하려면 네가 하던지.”

녀석은 그 명분을 대수롭지 않게 내동댕이쳤다. 

“그럼 월권이니 뭐니 딴죽 걸지 말던지!”

녀석의 무능에 화살을 날렸다. 

“너도 알다시피 얘들이 내 말 듣냐? 네 말 더 잘 듣잖아?”

녀석이 그 화살을 도로 내게 날렸다.

“그게 내가 월권해서 그렇다는 거냐, 지금?”

내가 그놈의 화살을 잡아 아예 부러뜨렸다. 

“그냥 사실이 그렇다고. 우리 반에서 뭐 지금 내 말이 먹히냐?”

녀석이 꼬리를 내렸다.

“싫으면 관둬.”

이 힘 빠지는 대화는 결국 내 고함으로 끝난다. 

“야! 앞으로 우리 반에서 여학생들 앞에서 저질스런 말 하는 놈들 있으면 죽을 줄 알아!”

일단 얼버무리고 자리로 돌아와 내내 나는 녀석의 질문에 시달렸다.

‘공부도 잘하고 뭐 하나 못하는 게 없는 녀석이 왜 그런 권위가 없다고 하는 거지?’ 

이 질문은 내 독재 정권의 철학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건 또 한 신앙인으로서 커다란 신앙적 고민도 되게 했다. 

‘이 놈이 지금 내가 그동안 터무니없이 교만하게 살아왔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녀석은 내게 조금씩 불길한 느낌의 존재로 자리 잡혀 왔다. 반장인 녀석과 남학생의 성적이 좋으면 좋을수록 녀석에 대한 이 불길한 느낌은 더욱 커져갔고 두렵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사사건건 자기 멋대로 일을 처리해 버리는 녀석 때문에 녀석을 긍정적인 존재로 볼 수 없었고 존경심으로도 발전할 수 있었던 그 두려움은 항상 미움으로 끝났다. 게다가 녀석은 지가 뭘 잘했다고 항상 잔뜩 인상을 쓰며 다녔다. 우린 서로 곱게 쳐다보지 않았고 흘겨보거나 아예 보지도 않고 말을 했다. 우리의 불화는 급기야 외부적으로도 뚜렷이 드러났다. 심지어 타 학급의 임원들이 우리를 보면 걱정을 했다. 반장 부반장 사이가 저래 가지고 저 반은 어떻게 될까-하는 걱정의 소리가 오며 가며 들려왔다. 내가 반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나는 반장이 미웠다. 

화.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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