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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은 Sep 21. 2024

사라진 명오

내가 널 대할 때는 한 없이 조심스러워져서


 다음날 은월은 아침 일찍 도서관을 방문했다.  쉬는 시간마다 도서관에 와서 자는 승주를 찾을 생각이었다. 어제 있었던 일이 신경 쓰였던 것이다. 항상 자기 앞에서 웃고만 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지는 일은 흔치 않아 은월도 당황했었기에. 그걸 빌미로 아침 일찍부터 명오의 얼굴을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카운터에 있어야  명오가 보이지 않았다. 사서 선생님이 대신 앉아서 은월을 보며 반갑게 인사해 줄 뿐이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어제 책을 읽었던 서가에 가서 책갈피를 끼어둔 책을 펼쳤다. 다행히 작은 쪽지가 있었다. , 안도의 한숨을 쉬고 쪽지를 열어보았다. 미안해.


미안해?”


그래. 미안해해야지.”


“깜짝야.”


 입 밖으로 쪽지의 내용을 읽던 은월은 바로 옆 서가에서 책장 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승주에 깜짝 놀랐다. 방금 잠에서 깬 건지 승주는 평소와는 달리 풀어진 눈빛으로 하품을 했다.


명오가 나한테  미안해하지?”


아침 자습시간 제치고 여기서 잤는데 그때부터 없었어.”


“도서관에 못 와서 미안하다고 하는 건가?”


  은월은 불안한 느낌을 지울  없었다. 초조하게 입술을 씹으며 쪽지 밑에 아주 작은 글씨로 답을 써넣었다. 보고 싶어. 그리고는  쪽지를 책갈피와 함께  사이에 끼어두었다.

 그날부터 명오는 보이지 않았다. 은월은 늘 불안해했지만 책 속의 편지는 계속 있었기에 그가 장난친다고 생각했다. 먼저 반에 찾아가거나 주변인들에게 그의 연락처를 묻는 건 전혀 은월답지 않았다. 명오의 부재가 마냥 나쁘지는 않았다. 승주와 친해지는 계기로 적용되기도 했으니까.

 매일 도서관에 와서 명오를 찾는 은월에 애가 타는 건 승주였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면서 직접 찾아보지는 않아? 누구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그런 거 아니거든...”


 명오 앞에서만 붉어지던 얼굴은 이제는 명오의 이야기만 꺼내도 그렇게 됐다. 문제집을 덮은 승주가 턱을 괴고 은월을 바라보았다. 시원하게 묶은 머리에서 은은한 샴푸향이 풍겼다.


나는.”


?”


“찾아주라.”


 내가 사라지면   찾아주라. 은월은 어이없어하면서 웃었다. 은월이  진지할 때마다 장난으로 자신을 풀어준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진심이 누군가에게는 장난이 되어 닿는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


 명오가 보이지 않기 시작한 날이 지났지만, 그럼에도 은월은 먼저 반을 찾아간다거나 누구에게 묻거나 그러지 않았다. 책 속의 쪽지는 여전히, 매일, 매 쉬는 시간에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은월에게 안도는 되었으나 그렇다고 명오를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쪽지를 볼 때마다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디 있는 거야, 너. 나 두고 어디 간 거야.            

            

 그렇게 은월이 명오의 부재에 잠 이루지 못하던 어느 날, 책에 끼워진 편지는 처음 읽었을 때처럼 간결해졌다. 딱 세 글자였다. 좋아해. 은월은 저를 부르는 승주의 외침에도 도서관에서 빠져나와 교무실의 사서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전학 갔잖아. 친한 거 아니었어? 은월은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허겁지겁 은월을 따라온 승주는 은월을 복도로 데리고 나갔다. 서럽게 우는 은월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눈물을 닦은 은월이 말했다.


누가  때는,”


. 말해.”


“그냥 말없이 안아주는 거야. 이런 것도 과외해줘야 해?”


 미안해. 사과를 하며 승주는 은월을 안았다.


“그리고 지금처럼 항상 하나하나 다 알려줘.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널 대할 때는 한 없이 조심스러워져서. 은월의 울음소리에 승주의 마지막 말이 묻혔다. 그래도 은월이 들었을 거라고 승주는 믿었다. 은월은 승주의 품 안에서 조용히 눈물을 계속 흘렸다. 다행히 종이 쳐서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은월의 울음소리는 승주의 품에 묻어갔고 눈물은 승주의 하복 상의에 물들었다. 그날부터 은월은 약 일주일 간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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