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은 Sep 15. 2024

첫만남2

내가 너를 보고 싶어 하니까

 다음 날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들른 승주는 두리번거렸다. 은월이 보이지 않았다.     


“뭐 찾아?”     


 승주를 본 명오가 물었다.     


“그런 건 아니고. 달걀에 다른 주문도 있었던 것 같아서.”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명오는 승주를 빤히 바라보았다.     


“근데 그 주문이 오래 지속될 것 같아.”     


 명오는 이상한 말 그만하고 서가에서 자기나 하라고 했다. 승주는 그 말에 끄덕, 고개를 까딱이고는 맨 끝 서가 의자에 앉았다. 벽에 기대 자려는데 자신의 눈높이에 있는 책들 사이에 처음 보는 달걀이 있었다. 그 달걀에는 이승주, 세 글자가 굵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누가 보냈는지 추측할 수 있는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걸 남기지 않아도 당연히 저일 것을 알 거라는 확신이 가득했으리라. 확신이자 믿음. 방황만 했던 승주에게는 그런 믿음이 필요했다.


 어제 한 약속이 생각나서 서가에 기대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확실히 신간이 아닌, 그러니까 자주 읽히지 않는 책들이 모인 구석진 자리라 공부 관련 제목들이 많이 보였다. 으음. 어떤 걸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데 앞 서가에 발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고 책들 사이 빈 허공을 응시했다.     


“이상해.”     


 명오인 것을 인지하자마자 승주는 표정을 굳혔다. 고개를 내려 다시 책들의 제목을 훑었다. 달걀은 소중히 하복 셔츠의 주머니에 넣었다. 오랜만에 상의 단추를 끝까지 잠그고 명찰까지 단 승주를 명오는 빤히 쳐다보았다. 더구나 오늘은 항상 하던 귀걸이도 없었다. 머리색도 옅어진 것 같고.


 책 읽을 건데 방해하지 마. 책을 읽는다고? 명오의 놀란 표정은 승주를 기분 나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자신이 지금까지 쌓은 행보를 생각하며 조용히 무시했다. 그럼에도 명오는 승주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나 정도는 화려하게 살길 바랐는데.”

 “그 인간들 때문이 아니야. 약속했어. 대학 가기로.”     


 서가 하나를 사이에 둔 채로 대화는 이어졌다. 대화라기엔 명오가 일방적으로 질문을 했고 승주는 관련 없는 답을 하거나 혹은 무시했기에 부족하긴 했다. 명오가 자꾸 책이 없는 작은 공간으로 승주를 쳐다보자, 승주는 그 빈 공간을 옆에 있는 책들로 가렸다. 그러면 명오는 계속 그 책들을 다른 곳에 옮겨서 자신의 시야를 가릴 것이 없게 만들었다.     


“누구랑 약속했냐니까?”     


 승주가 명오의 얼굴이 보이는 곳에 책을 놓고,     


“알 거 없다고.”     


 그럼 명오는 다시 책을 옆으로 치우고,     


“집에는 언제 들어올 건데?”     


 그러다 탁. 승주가 신경질 가득한 얼굴로 손에 쥐고 있었던 책을 힘차게 서가에 내려놓았다. 익숙하다는 듯 명오는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다.     


“기다릴게. 오늘은 집에 가자.”     


 허, 헛웃음을 가볍게 내뱉은 승주가 저의 손에 쥐어 있는 아무 책이나 들고 도서관 밖으로 향했다. 카운터 옆 센서기에서 삐용삐용 소리가 났다. 대출받지 못한 책이 입구에 지나갈 때마다 경고가 울리도록 설계된 센서 기였다. 승주가 잠깐 멈칫하자 뒤에서 명오의 말소리가 들렸다.      


“봐봐. 네가 아무리 불량 학생 연기를 해도 경고음 하나에 머뭇거리잖아.”     


 승주는 무시한 채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승주가 도서관 밖으로 나가자 경고음도 멈추었다. 어라 또다시 승주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얼굴 멍. 진짜 나았네?”     


 승주가 민망한 긋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직 밴드가 두 개 정도 붙어 있었다.     


“누가 주문 걸어서.”     


 은월이 활짝 웃자 승주의 귀가 약간 붉어졌다.     


“보물찾기, 그런 거 잘했나 보다? 잘 숨겼어.”


“그게 너한테 보물이었어?”     


 당황해서 어버버 거리는 승주에 은월은 다시 웃었다. 괜히 더 부끄러워진 승주는 고맙다고 고개를 까딱이고는 반으로 발을 옮겼다. 욕을 지껄이면서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노력했다.


 은월이 먼저 가버린 승주를 연신 불렀지만 듣지 못한 듯했다. 공부 관련해서 몇 가지 물어볼 참이었다. 그러나 아까 승주의 손에 있던 수학 서적이 생각나 안심했다. 어제 약속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은월이 도서관에 들어오자 잔뜩 미소를 머금은 명오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은월을 본 명오는 한 번 더 웃었다.     


“왜 그렇게 웃고 있어?”


“오래간만에, 정말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눠서.”


“정말? 누구랑?”     


 명오는 머뭇거리며 답했다.     


“가족.”     


 은월은 더 묻고 싶었지만 실례인 느낌이 들어서 그만하기로 했다. 오전에 읽었던 책이 있는 서가에 들어갔다. 심호흡을 하며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오늘도 쪽지가 있을까? 침을 꿀꺽 삼키고 책갈피를 끼어둔 부분을 활짝 펼치었다. 은월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저번과는 다른, 예쁜 종이 카드가 있었다. 카드를 집어서 뒤집어보았다. 그거 알아? 너 진짜 예뻐. 그냥 하는 게 다 예뻐.


 설레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책을 덮었다.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데도 더웠다. 얼른 창문에 있는 볼펜을 집어 들었다. 나한테는 네가 보물이야. 작게 답장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카운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명오를 쳐다보았다. 흠잡을 수 없을 만큼 바르게 입은 복장. 하얀 피부와 안경은 늘 잘 어울렸다. 신간에 도장을 찍는 명오의 모습을 몰래 보면서 아까의 카드 내용을 떠올렸다.


 방과 후, 은월과 승주의 과외는 도서관에서 이루어졌다. 은월은 어차피 야자를 신청했기에 학교에 있어야 했고 승주는 아르바이트 시간을 제외하고는 도서관에 있었기에 적합했다. 도서관 안쪽 책상에 앉아 은월이 승주에게 공부를 알려줄 때마다 명오가 궁금한 듯 기웃거렸지만 승주는 가볍게 무시했다. 일방적으로 명오가 승수에게 관심이 있는 건가? 그러나 직접 불어보지는 않았다. 명오는 은월에게 승주에 대해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월은 굳이 먼저 궁금해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과외가 한 달 정도 진행되고 은월은 확실히 이상함을 느꼈다. 승주는 공부를 잘했다. 은월이 가르쳐준 것을 바로 이해해서 문제에 적용하기도 했고 수학 같은 과목은 오히려 은월의 잘못된 개념을 바로잡아주기까지 했다.     


“솔직히 말이야. 네가 도중에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어.”     


 은월의 말에 텀블러로 물을 마시던 승주가 책에 물을 흘릴 뻔했다. 여전히 목 끝까지 단추를 잠근 교복은 불편했다. 귀걸이를 학교에서 더 이상 하지 않았음에도 버릇처럼 귀걸이 부분을 만지는 것도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넌 너무 솔직해. 그리고 그게...”


“내 단점이라고?”     


 승주는 입을 다물었다. 하마터면 ‘그게 네 매력이지’라고 생각한 대로 말할 뻔했다. 서가에서 책을 읽는 척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명오를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다. 역시나 명오가 있는 도서관은 과외하기 좋은 곳은 아니었다.     


“도서위원이 카운터 안 지켜도 되나.”     


 승주가 다시 볼펜을 잡고 문제를 보며 말했다. 명오의 눈치를 살짝 살핀 은월이 말했다.     


“어차피 사람 없으니까.”


“남용.”


“그 남용으로 너 맨날 도서관 와서 자도 내가 뭐라고 안 하지.”


“도서위원이 한 명밖에 없나. 시끄럽게.”     


 명오의 말에 승주는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승주와 눈이 마주친 명오는 활짝 웃으면서 은월과 승주에게 다가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승주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직 오늘까지 할 거 안 끝났는데?”


“어차피 나 다 아는 거야.”     


 은월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럼 왜 과외하는데?”


“그건 내가 너를...!”     


 보고 싶어 하니까. 혹은 너랑 같이 있고 싶으니까. 이 중 어떤 것이었는지는 승주도 알지 못했다. 낯 간지러운 감정에 명확한 이름 붙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마음에 충실했다.


 명오는 붉어진 승주의 귀를 한 번, 승주의 얼굴을 한 번 훑었다. 흠.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은 승주는 뭔가 알았다는 듯 씩 웃었다. 아무튼 갈게. 승주가 가방 한쪽 끈을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도서관을 나갔다.

이전 04화 첫 만남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