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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은 Sep 22. 2024

사라진 승주

설렘을 고이 모셔둔 기억 한 편에서 꺼냈다

 학교 과제를 위해 책이 필요했다. 은월은 오랜만에 도서관으로 발을 옮겼다. 승주에게 말없이 못 온 것, 일주일 내내 과외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하려고 했는데 승주가 없었다. 사서 선생님만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은월은 찾던 책의 번호를 확인하고서 자신이 일주일 전에 읽었던 책이 보여 펼쳐보았다. 부분, 부분 살펴보았지만 편지는 없었다. 다만 책에 쓰인 숫자와 영어 단어에 형광펜 표시가 있었다. 형광펜 자국을 따라 책장을 넘기며 단어들을 자신의 수첩에 기록했다. 교실 안의 자신의 책가방 속 휴대전화를 꺼내 그 단어들을 조합해 보았다. 설마. 은월은 조합한 단어들을 검색했다. sns 계정 하나가 나왔다. 서둘러 그 sns 사이트에 가입하여 메시지를 보냈다. 한은월, 딱 세 글자였다. 은월이 학교가 끝날 때쯤 답장이 왔다. 오랜만이야.


  은월은 아낌없이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했다. 말없이 전학 가면 어떡하느냐고 보냈다. 명오의 이름을 메시지 창 안에서 가득 불렀다. 그는 잠깐 멈칫하는 것 같더니 평소 친했던 것처럼 연락이 왔다. 전화하고 싶다는 은월의 말에 그는 전화는 할 수 있지만 난 말을 할 수 없다고, 집 안이나 밖이나 가족들의 감시가 심한 가정이라고 했다. 은월은 이해가 안 됐지만 알았다고 하고 학교가 끝날 때마다 매일 전화를 기다렸다. 그가 전화를 하면 은월은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답 없는 독백이었지만 괜찮았다.


  은월은 명오와 연락까지 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찝찝한 기분을 버리지 못했다. 허전했다. 하루 종일 고민한 은월은 알게 되었다. 승주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승주가 도서관에 보이지 않았다. 은월은 승주의 반도, 번호도, 연락처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날 은월은 전화하면서 처음으로 승주 이야기를 했다. 승주가 자신의 시야에 안 보이는 것에 대하여. 전화가 끊기고 메시지가 왔다. 이승주가 곁에 없는 게 그렇게 슬퍼? 당연하지. 왜, 좋아했어? 은월은 몇 초간 고민했다. 그러나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그러면 넌 나를, 그러니까 윤명오를 좋아했어? 은월은 책 속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의 설렘을, 고이 모셔둔 기억 한 편에서 꺼냈다. 누가 나를 궁금해하는 것일까, 기대하며 도서관으로 갔던 시간들. 오늘은 어떤 내용이 있을까, 얼굴 붉혔던 날들. 답장을 보냈다. 응, 그런가 봐.


 그날 밤 은월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스스로 부정하지는 않았다. 승주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표류했다. 은월은 고개를 내젓고 잠에 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핸드폰을 켜서 다시 연락을 했다. 이승주 몇 반이야? 답장은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왔다.


 다음 날 점심시간, 은월은 승주의 반 앞에서 기웃거렸다. 반 안의 모르는 학생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움찔하긴 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몇 분이나 반 안을 살피고 기다려도 승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 찾아?”


 밝은 머리카락 색을 가진 여학생이 은월에게 물었다. 은월은 침을 한 번 삼키고 말했다.


“이승주. 이 반 아니야?”


 여학생의 눈빛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은월에게 물었다.


“혹시 너도 피해자야?”


“피해자라니?”


“걔 학교폭력으로 신고당했잖아. 그래서 안 오는 거고.”


 순간 은월은 누군가 뒤통수를 때린 느낌을 받았다. 넋 나간 표정으로 곧바로 그 자리를 이탈했다. 저기, 괜찮은 거야? 뒤에서 여학생의 말소리가 들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은월은 승주와 도서관에서 이야기했던 기억의 일부분을 꺼냈다. 승주는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 위에 지어진 곳에 산다고 했었다. 그럼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은 어디일까. 한참 고민하던 은월은 아,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은월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첨으로 싸움을 하는 승주를 마주쳤던 골목이었다. 이 근처에도 편의점이 있었는데. 주변을 살피던 은월이 멈칫했다. 찾았다. 편의점 옆에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


 끈적끈적한 낡은 계단을 오른 은월은 옥상과 마주했다. 바닥은 초록색 페인트가 거의 벗겨져있었고, 큰 정자 하나가 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조금 큰 컨테이너 박스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에 문이 없고 정자 위에 널린 빨래가 없었다면 은월은 잘못 왔다고 생각해 다시 내려갔을 것이다. 그러니까 둘의 재회는 은월의 노력만 있었다는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은월의 예상과는 다르게, 몇 번 문을 두드리자 바로 인기척이 들렸다.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곧이어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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