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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은 Oct 14. 2024

남겨짐에 대하여

선물 받은 건 기억이었다

 은월은 어디로 전학 갔냐고 물었고 항상 답은 정확한 위치가 아닌, 멀어서   거야, 이게 끝이었다. 그래도 국내니까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럼에도 답장은 똑같았다. 메시지가 오는 빈도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매일 전화가 걸려왔다. 역시나 은월의 독백으로만 가득한, 듣고 있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는 무의미한 일방적인 전화. 은월은 점점 따분함을 느꼈다. 혼자만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어 하는  같이 느꼈다. 그런 은월의 마음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전화는 항상 똑같은 시간에 걸려왔다.


 어느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니 은월의 이름으로 택배가  있었다. 은월은 자신이 무엇을 주문했는지 고민하며 상자를 뜯었다. 배송된 물품을 확인한 은월은 손을 약하게 떨었다. 자신이   전에 도서관에 읽었던   권과  위에 작은 쪽지가 있었다.  안을 읽으면서 살펴봐. 네가 그랬던 것처럼. 저번 주에 불현듯 자신의  주소를 물었던 메시지 내용을 떠올렸다. 은월은 연락을 끊을  없었다.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연락을  이상 하지 말까, 고민했던 은월의 마음이 굳게 바뀌었다는 것뿐이었다. 책들 사이에 예쁘고 겉멋이 가득한 고백 같은  없었다.  도서관에서 그랬던 것처럼 일상을 묻는 쪽지들이었다. 은월이 선물 받은  기억이었다. 학교에서 가장 빛났던 자신의 모습을 선물 받았다.


 택배를  받았냐는 연락은 없었지만 은월의 무미건조한 태도는 처음 연락했던 것처럼 사랑에 빠진 소녀의 말투가 되었다. 그걸로 기억을  받았다는 답장을 대신했다.  답장을 알아줬는지는  방도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믿기로 했다.


   정도 연락이 이어졌다. 주변에 친한 친구는 있어? 은월은 자연스럽게 승주를 떠올렸다. 연락을 하면서부터 승주의 자리를 의식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명오가 승주의 얘기까지 꺼낼 정도로 둘이 친했던가? 궁금한  많았지만 묻지는 않았다. 제삼자가 없는 둘만의 대화가 끊기질 않았으면 했다.


 1년이라는 기간은 아무리 친해도 한 번도 만나지 않고 딱딱한 문자로만 관계를 이어가기에는 무리인 시간이었다. 은월은 입시가 코앞에 있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자신이 먼저 연락이 없으면 바로 끊기는 관계가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시험을 핑계로 한 달간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후회했다. 시험이 끝난 날부터 은월은 더 이상 그의 소식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존재하지 않는 연락처라고 했다.


점심   먹어?”


“그냥 좀 피곤해서.”


  승주가 매점에서  듯한 빵을 은월의 책상에 내려놓았다. 은월은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연락이 끊기고 모든 것이 신경질 나는 4 말이었다. 승주는 은월의 책상  의자를 빼서 앉았다. 가만히 턱을 괴고 자신을 바라보는 승주에 은월은 시선을 피했다.


무슨 일인데? 얘기  해줄 거야?”


. 귀찮게 하지 .”


소원권   잊었어?”


“아, 알았어.”


 은월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승주는 그런 은월을 보며 헤헤, 웃었다. 같은 반이 되고 나서 승주는 작년에 만들었던 소원권 하나를 썼다. 우리 친구 하자. 이미 친구 아냐? 그런 거 말고. 밥 같이 먹고, 같이 다니고. 그런 거. 은월은 별 어려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좋은 , 시험 때문이야?”


그런 것도 있고.   쳤어?”


“못 쳤을 리가 없지.”


 은월은 책상 위에 있던 교과서로 승주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 명오는 잘 쳤다고 해도 저렇게 반응 안 했을 텐데. 아. 순간 떠오른 명오 생각에 은월은 머리를 두 번 정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승주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 윤명오 생각이라도 했어?”


뭐야. 어떻게 알았어?”


“그냥 느낌적인 거.”


 살짝 뾰로통해진 승주는 자세를 풀어 팔짱을 꼈다.


걔가 그렇게 좋아?”


“1 전이랑 바뀐  없네,  질문은.”


“내가 걔 얘기라도 해줄까?”


 은월의 눈이 순간 반짝, 하고 빛났다. 그리고는 바로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도 표류했다. 은월의 미소를 본 승주의 입가에도 꽃 자국이 생겼지만 왠지 모르게 쓸쓸했다. 으음, 고민하는 소리를 내던 승주는 책상 위의 은월의 손을 살짝 잡았다. 은월이 서둘러 손을 뺴고는 날 선 표정을 했다.


뭐야? 명오 얘기랑 관련 있는 거야?”


그럴 리가.”


“상당히 기분 나쁜데.”


 울컥, 명오의 가슴 밑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는 것 같았다. 여전히 자신은 명오와 많은 방향으로 엮여있었다. 승주는 자신의 손을 은월에게 내밀었다.


“이야기 보상으로 친구 손도 못 잡아줘? 왜? 혹시 뭐, 나한테 친구 이상의 감정이라든지...”


 .




*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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