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세상에서 낭만이 되고 싶어
승주는 명오의 꿈이었다.
정확하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험 성적표가 나오고 집에 들어가기 싫었던 중학생 명오는 학교 안을 배회했고, 우연히 음악실에서 들려오는 기타 소리를 들었다. 잔잔한 멜로디 안에서 아니야, 다시,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들킬까 봐 자세히 얼굴까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명오는 그날 그 연주에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명오는 늘 학교 수업이 끝나고 음악실 앞을 기웃거렸다. 약 일주일 동안 기타 연주를 듣고 명오는 한 가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음악실에서는 기타 소리만 들렸다. 같이 합주하는 소리가 한 번쯤 들릴 만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이에 의문을 품던 어느 날, 주황색 빛이 창문을 통해 복도에 들어왔던 날이었다. 음악에 슬픔이 담길 수도 있구나. 처음이었다. 기타 소리가 너무 슬펐다. 애잔했다.
명오가 도서부를 나가겠다고 말한 일은 결코 충동만 가득한 결정은 아니었다. 2학기 때도 도서부를 계속할 거냐고 확신에 차 물어본 담임선생님께 역으로 밴드부에 대해서 여쭈었다. 두 명 정도만 있어도 될 텐데, 한 명밖에 안 남아서. 그 말에 명오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저 밴드부에 넣어주세요.
승주가 명오를 찾아온 건 그날 오후였다. 누군가 귀마개를 끼고 공부를 하고 있던 명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가 가리키는 건 교실 앞문에서 저를 기다리는 한 학생이었다.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애가 공부를 방해하는 건 그다지 명오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한숨을 쉬고 그 학생 앞으로 다가갔다. 진한 검은색 머리에 단정한 교복. 모범생. 명오가 본 승주의 첫인상은 그랬다.
“면접 볼 거야. 오늘 방과 후에 음악실에 와.”
이승주. 기타 치던 애구나. 승주의 이름을 확인한 명오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괜히 건드리고 싶었다.
“어차피 나 없으면 사라지는데. 그런 게 필요할까?”
“오라고 했어.”
더는 말하기 싫다는 듯 승주는 뒤를 돌아가버렸다. 명오는 승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종이 치자 자리에 앉았다.
학교가 끝나고 명오는 또 음악실로 향했다. 다른 목적이 첨가되어서 그런지, 괜히 떨리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한숨을 한 번 쉬고 음악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던 승주가 명오를 돌아보았다.
음악 시간에는 교실에서 자습을 하거나 이론 수업만 했기에 명오는 음악실 내부를 천천히 구경했다. 먼지 쌓인 다양한 악기들이 질서 없이 있었다. 한쪽에는 장구들이 마구 섞여 있었다.
“창고 같다고?”
명오의 표정을 본 승주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명오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제 악기 연주는 컴퓨터가 다 해줘서 필요 없다는 분위기. 어떻게 생각해?”
“요즘은 인공지능이 시도 써주더라.”
“그래서?”
“내 꿈은 시인이야.”
승주가 웃음을 지었다.
“합격.”
악기 하나 다룰 줄 몰랐던 명오는 멜로디를 따고 작사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축제에 서게 된다면 보컬을 하라는 승주의 말에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승주는 기타뿐 아니라 피아노, 일렉, 베이스, 드럼 등등 여러 가지를 연주할 수 있었다. 그런 승주에게 명오는 물었다. 꿈이 뭐냐고.
“얼어붙은 세상에서 낭만이 되고 싶어.”
명오는 다짐했다. 승주의 연주 소리를 모두가 찬양하면서 듣게 될 세상을 만들고 말 거라고.
동아리 시간, 점심시간은 세상과 싸우는 이들에게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승주는 모친에게 독서실에 간다고 하고 방과 후에도 음악실로 향했다. 매일 승주의 연주 소리만 듣던 명오는 승주의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승주는 명오가 독서실에 간다고 한 거짓말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괜히 성적이 떨어질까 걱정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간단히 악기를 가르쳐주거나 명오가 작사를 끝내면 공부를 함께 하는 것으로 면죄부 삼았다. 왜 이렇게 공부를 잘해? 승주가 물었다. 성적 떨어질 때마다 아빠가 악기를 하나씩 버렸으니까. 무덤덤한 답변에 명오는 승주의 손을 겹쳐 잡았다. 이젠 괜찮아. 음악실에 악기 많잖아. 승주가 명오를 쳐다보며 웃었다. 팬도 있고. 창문 안으로 낙엽 하나가 떨어졌다.
승주는 주인공이 아프거나 사고를 당해서 일찍 죽는 소설을 많이 읽었다. 그래서 그런 시시콜콜한 내용은 더 이상 승주에게 슬픈 감정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소설의 주인공 친구가 된다는 건 완벽하게 다른 이야기였다.
명오가 학교 수업시간 중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듣고 명오는 도망치듯 학교에서 빠져나갔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들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승주를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화장실을 갔다 온 명오의 모친에게 승주는 수액을 맞고 자는 중이라는 답을 받았다. 명오의 상태에 대해서도.
몇 시간을 편히 자고 일어난 명오가 기지개를 켰다. 자신의 손을 잡고 침대에 엎드려 졸고 있는 승주를 발견하고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응급실 벽면에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5시니까 2시간 조금 넘게 잠을 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