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우-1
시우의 꿈은 초등학생 때부터 명확했다. 오로지 춤. 누군가 댄서, 아이돌 등 구체적인 직업을 유추할 때마다 고개를 흔들었다. 춤. 그냥 춤이라니까.
공무원을 하길 원했던 그의 어머니, 윤과는 당연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 중학생 시절, 전교 10등 안에 들면 허락해 주겠다는 윤의 말에 시우는 덜컥 전교 3등의 성적표를 받아왔다. 이로써 그동안 춤을 춘다고 공부를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였음이 밝혀졌다. 윤은 더 욕심이 났다. 그러나 그녀의 전남편이 양육권을 표시하는 대신 건 조건이 있었다. 내 아들 하고 싶은 건 다 하게 해 줘. 시우보다는 그 당시 남자친구였던 인우와의 관계가 더 중요했던 윤이었기에, 그녀는 시우가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전문적인 입시 춤 학원을 다니는 것을 허락했다.
시우는 인우가 싫었다. 아니, 윤이 더 싫었다. 힘들게 얻어낸 약속이 인우의 “난 그래도 시우가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으면 좋겠어.”의 말에 끝나버렸다. 윤은 시우의 의견 없이 바로 시우의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했다. 1년 늦은 건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시우가 입시학원까지는 건드리지 말아 달라며 애원했다. 슬프게도 그 진심이 인우에게는 닿지 않았다. 한순간에 꿈이 모두 짓밟힌 시우는 머리색부터 바꿨다. 목요일마다 함께 갖는 식사자리에 늘 참여했지만 항상 늦었다. 그리고 이 가정사를 오늘 처음 만난 현에게 털어놓았다.
처음이었다. 안쓰럽다는 눈빛, 불쌍하다는 눈빛이 아니었다. 현은 시우에게 ‘멋지다 ‘라는 말을 했다. 뭐가 멋지냐고 따지듯이 묻자, 답변은 의외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무언가 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는 것, 그걸 인정받기 위해 치열했다는 점, 세상이 꿈을 인정하지 않자 반항할 수 있었다는 것. 시우가 물었다.
“반항할 수 있는 게 왜 멋진데?”
“반항해도 가족이 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게 멋져.”
“이해가 잘 안 되네.”
“안 무서워? 부모님 뜻대로 안 하는 거? 나는 너무 무서워. 실망시켜 드릴까 봐. 그리고 날 안 사랑하실까 봐.”
무덤덤하게 말하는 현에 시우는 놀랐다. 저런 말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 분명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건데,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시우는 현을 새장에 갇힌 파랑새라고 비유했다.
“몇 십 년간 새장에 갇힌 새에게 자유를 줬어. 새장의 문을 열어준 거지. 그 새는 어떻게 할까?”
“바로 날아서 탈출하겠지? 날개 쭉 펴고.”
“그 정도로 갇히면, 새는 날개 펴는 법을 잊게 돼. 하늘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못 날아. 연습은 안 해봐서.”
불쌍하다. 현이 읊조렸다.
“너도. 아무리 갇혀 있어도 날개 펴는 연습은 계속해야 해.”
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시계를 확인한 현이 재빠르게 패딩을 입었다. 시우는 놓지 않고 현의 핸드폰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라면 국물 좀 버려줘. 부탁할게!”
현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급하게 편의점을 떠났다. 시우는 씩, 웃었다. 아까는 겉모습만 보고 겁에 질려 있었는데 지금은 경계를 풀고 편하게 대했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새벽 1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때마침, 사진 한 장과 새 매시지가 왔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지만 바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어두운 배경에 찍힌 비둘기 사진. 그리고 매시지. 날게 펴는 연습! 오늘 두 개나 했어. 20분 지각, 핸드폰 미제출. 시우는 실실 웃더니 답장했다. 잠이나 자라, 짹짹아.
“뭘 그렇게 웃어?”
언제 나온 건지 부엌에서 물을 따라 마시던 윤이 식탁에 앉은 시우에게 물었다. 시우는 핸드폰을 계속 보는 상태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들이 왜 늦게 왔는지는 안 궁금한가 봐.”
“징그럽게 왜 이래.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거야?”
시우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응. 옛날부터 새 한 마리 키우고 싶었거든.”
윤이 컵을 세게 내려놓았다.
“조금 잘 대해줄 수는 없어? 인우 씨 상처 잘 받아.”
“그런 사람이 사랑하는 여자의 아들 꿈을 바로 바꿔버리네. 그 사람 상처랑 아들의 상처. 비교할 생각도 없는 건가?”
“공부 잘하잖아. 안타까워서 그래.”
시우가 비웃었다. 아무런 대꾸도 없이 방에 들어가 현의 연락을 확인했다. 내일 점심시간을 나갈 수 있는데. 시우가 답장했다. 만날까? 이어지는 답. 손수건 들고. 시우는 또 킥킥 웃었다. 아까 자신의 이야기 너무 몰입하길래 현 몰래 현의 가방에 손수건을 넣었었다. 몇 분 고민하다가 답을 보냈다. 고민해 볼게.
12시 30분이 다 되어 어제의 편의점 앞에서 기다렸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현의 모습이 보였다. 현은 힘차게 웃으며 시우에게로 뛰어왔다.
“이렇게 마음대로 나와도 돼? 관리 힘든 것 같던데.”
“처음에 스케줄 제출할 때, 금요일 점심시간 1시간은 주변에 과외 있다고 거짓말했어.”
“뭐야. 이미 날개 펴는 연습 잘하고 있었네.”
“자, 그래서 오늘 다시 얘기 시작해 봐.”
“어제 다 했는데?”
“그 이후 아무거나 다 해줘.”
음, 시우가 살짝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은 공평하게 네 얘기해. 궁금해. 듣고 싶고.”
현이 활짝 웃었다. 이내 둘은 또다시 어제의 그 편의점에 들어갔다. 배부르면 식곤증이 온다면서 현은 삼각 김밥을 골랐고, 시우도 배가 고프지 않다며 흰 우유를 골랐다.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구석진 곳에 앉았다. 이 역시 학원에서 아는 얼굴을 마주치면 불편하다는 현의 말 때문이었다.
현의 꿈은 시인이라고 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반대했고 글을 쓰는 것을 들키면 정말 큰일이 난다고도 했다. 그래서 글을 숨어서 써야 한다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길 원하는 모친의 입김에 교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시우는 우물우물 먹으면서 얘기를 하는 게 소 동물, 꼭 햄스터 같다고 생각했다. 머리카락이 곱슬이라 그런가? 등등의 생각을 하는데 현이 째릿, 쏘아보며 말했다. 안 듣고 있었지.
“우리 짹짹이 이야기인데 안 들을 수가 있나. 요즘도 글 써?”
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가방을 열어 노트 한 권을 꺼냈다. 겉면에 ‘국어’라고 쓰여 있었다.
“처음 두세 장만 모의고사 정리고 그 후에는 전부 글이야.”“보여줘.”
“... 정말?”
현이 신난다는 듯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공책을 넘기며 조금 고민하더니 공책 한 면을 시우에게 보여줬다.
“어제 쓴 거야.”
시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읽었다.
추락을 담은 곡선
아무도 쏘지 않은 화살의 과녁은 나였다. 그 누구도 날 향하지 않았지만 수백 개의 비수가 꽂혔다. 의도 없는 말에도 나는 추락했다. 소리를 차단했다. 때로는 외로운 정적이 필요하다. 고요 속에 들리는 심장 소리에 위안을 얻고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에 섰다. 무리를 벗어난 새였지만 타의가 아니니 그 순간을 즐겼다. 소리가 눈에 보이는 밤. 마음 저 끝 울고 있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초봄. 나의 추락을 담은 곡선은 보이지 않는 달을 향했다. 바다에 비친 달인지도 모른 채. 희망을 안고 추락한 곳은 봄인가, 겨울인가?
“어떻게 너희를 한낱 숫자로 평가하니?” 중학생 시절을 회상한다. 과학 선생님의 아무렇지 않은 말은 고요한 내 호수에 돌을 던져 둥둥 울리게 했다. 가끔 숫자의 영향이 커짐을 느낄 때면 그 호수를 되찾지만, 돌의 울림은 이제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아졌다. 성장을 의미했지만 이름 없는 아픔이 날 애워쌌다. 덤덤해졌다. 그게 더 슬펐다.
가슴 깊은 울렁거림을 토하지 못해서 호수에도 파도가 친다. 남부럽지 않게 그렸던 꿈의 지도도, 커다랗던 내 날개도 숫자 앞에서는 힘이 없어진다. 신분제 사회도 아닌 현재 아무도 정하지 않은 급이 날 숨 막히게 한다.
과거는 미화되고 현재는 부정적이며 미래는 긍정적이게 다가오는 경향이 있다. 먼 미래의 나는 웃음 짓고 있다. 그 누구의 구원도 받지 않으며 이 길을 계속 걷는 이유이다. 유일한 구원은 미래의 나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이유이다. 추락해도 희망을 안았으니 새로운 길이며 겨울일지언정 꽃 피는 계절이다. 입안의 칼을 닫고 힘들었을 내 귀를 쉬게 하고 마음속 아이를 안는다. 오늘의 비애가 여기서 끝나길, 손끝에 일러둔다. 마지막에 웃는 것보다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가 더 의미 있음을 이제는 안다. 넘어진 나에게 위로를 건네 다시 서게 하는 방법도 안다. 다시 걷는다. 밤하늘의 달인 지 바다에 비친 달인 지는 중요하지 않다. 빛이 난다. 미래의 나처럼. 그래서 향한다. 그래서 아프지 않다. 나의 고귀가 변하지 않았음을 안다. 남의 말에 과녁이 되어주지 않기로 한다.
시우는 조금 놀랐다. 저렇게 동글동글, 귀여운 머리에서 이런 어두운 생각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내가 부모였다면 세상에서 가장 예쁜 것들만 보여줘서 매일 웃게만 만들 텐데. 사랑의 방식이 달라서 그런가? 생각이 많아질 때쯤 현이 말했다.
“어제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쳤어. 3등급 나왔어. 그렇게 자신 있던 국어가.”
시우가 조용히 현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엄마한테 미안했어. 하루 13시간 공부하는 학원에 다닐 수 있게끔 돈 지불해 주셨는데 난 발전한 게 없잖아. 그다음으로는... 너무 슬펐어.”
현이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했다.
“내 이름 불러줘.”
“김현, 현이.”
“그렇지? 그게 내 이름이잖아. 근데 종종 잊어. 1에서 8까지, 그 안의 숫자들로만 내가 불리어. 품질 정하는 것 마냥 난 그 숫자 안에서만 존재하는 느낌이 들어.”
“내가 많이 불러줄게.”
현이 또 방금 웃었다. 말 한마디에도 잘 웃는 아인데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시우는 괜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어제 현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처럼 힘나는 말들을 해줘야 하는데.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조심스러워졌다. 오래 걸리지 않아 입을 열었다. 멋지다.
“뭐가? 난 그냥 너무 바보 같은데.”
“하기 싫어도 꼿꼿이 하려고, 발전하려고 노력하잖아. 본래의 꿈도 잊지 않고 이어나가고 있어. 전혀 바보 같지 않아. 너에 비해서는 내가... 바보 같지.”
“왜?”
“세상이 꿈을 인정해주지 않아도 넌 계속 꾸고, 그 세상에 맞추어 노력해, 근데 나는 실패랑 좌절만 가득해서 벗어 나오지 못해.”
현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자신 앞에 있는 삼각 김밥 비닐을 집었다.
“잘 봐봐.”
그리고는 반대편 쓰레기통에 있는 힘껏 비닐을 던졌다. 그러나 빗겨나가서 땅에 떨어졌다.
“성공이야, 실패야?”
“실패지...?”
그때 청소를 하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쓰레기통 옆에 있는 비닐을 발견했다. 당연하게, 그는 비닐을 다시 쓰레기통에 넣었다. 현이 다시 물었다.
“이런데도 계속 실패야?”
“... 성공인 것 같기도.”
“너는 쓰레기통에 빗겨 난 비닐인 거야. 아직 실패인지, 성공인지 그 누구도 몰라. 그리고 실패였다면 어때? 누군가 너를 일으켜 세워서 쓰레기통에 넣어줄 수도 있고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배울 수도 있잖아.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면 슬퍼하고 좌절하는데 그렇지 않아. 스스로가 더 좋은, 더 행복할 방법을 찾도록 기회를 주는 거야. 네가 지금 그런 과정이야. 그래서 넌, 지금 너무나도 멋진 거야.”
시우의 머리가 띵해졌다. 악의적인 의도 없이, 비꼬는 것 없이 오로지 자신을 위하는 말은 처음이었다. 코끝이 찡해졌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스스로한테 하는 게 어때?”
“글의 기능이 뭔지 알아?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보게 해서 마지막엔 항상 날 위로해 줘. 이미 나한테는 이런 말 많이 해. 다른 사람한테도 할 수 있나, 싶었는데. 네가 진짜 마음에 드나 봐.”
현이 시우에게 윙크를 했다. 시우는 눈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더니 우유 곽으로 개봉했다. 침묵의 식사가 이어졌다. 현은 귀가 빨개진 시우를 빤히 쳐다봤다. 아마도 이런 위로가 익숙하지 않았으리라.
“어라.”
침묵을 깬 건 지유였다. 국어 학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이니, 출근 혹은 퇴근길에 들른 모양이었다. 현은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 손톱 끝만 바라보았다.
“3등급이 공부 안 하고 여기에서 뭐 해?”
현이 어깨를 움츠렸다. 시우가 조용히 현의 손을 잡았다.
“얘 3등급 아닌데요.”
“친구야? 김 현 3등급 맞아.”
“예쁜 이름 두고 왜 숫자로 불러요? 얜 쇠고기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데. ‘3등급’ 아니고 ‘김현’”.
지유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어른의 말에 말대답하는 시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현에게로 말을 이어갔다.
“땡땡이치지 말고 열심히 해야지.”
“... 네. 죄송합니다.”
현의 대답을 들은 지유가 씩, 웃으면서 편의점을 나갔다. 현은 한숨을 쉬었다. 시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현은 잘못한 것이 없었다. 어른들이 나든 줄 세우기 게임에서 아슬아슬하게 다친 피해자였다. 그런데도 왜 죄송하다고 하는 걸까. 그런데도 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일까.
“짹짹아.”
현이 시우와 눈을 맞추었다.
“날개 펴는 연습.”
그제야 현이 웃으며 어깨를 폈다. 슬픔이 묻어나는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