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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아바 Mar 02. 2020

코로나19를 만난 임산부의 나날

임신 10개월, 36주 2일째 (D-26)

나라 안팎으로 시끄러운 날이 계속되고 있다. 전염병이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흔들고 있다. 경제적인 불황과 불안 속에서 사람들은 위축되고 높은 불안과 피로감에 괴로워하고 있다. 특히나 기저질환자나 노약자에게 치명적이라는 보도가 연실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막달 임산부로서 나는 통탄을 금할 수 없다.


30시간 만에 감염이 확정된 중국의 신생아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곧 종식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만 조심하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잠깐 외출을 조심하고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꼼꼼하게 챙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과 함께 거세게 흔들렸다. 


하루에 한두 번씩은 꼬박꼬박 울리는 긴급문자에 가슴이 철렁거렸다. 어제 바람도 쐴 겸 다녀왔던 동네 마트를 확진자가 전날 방문했다는 문자를 받았을 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래도 당일이 아니라 다행이지 않냐, 그날은 왠지 다른 마트를 들려보자고 제안했던 남편은 자신을 칭찬하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열심히 내 기분을 맞추며 의연하게 지내는 남편. 하지만 함께 하는 산책길 횡단보도 너머에서라도 누군가 기침을 하면 주도면밀하게 관찰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태아를 데리고 있기 위해 몸의 면역력이 일부러 떨어지는 임산부는 특히나 조심해야 하는 전염병이다. 아이를 위해 찾는 병원에서도 감염을 걱정해야 한다. 아이를 낳으러 갈 때도, 낳고 나서도 걱정이다. 출산 예정인 병원은 주보호자 1인을 제외한 면회를 제외한다고 한다.(아이를 낳고 친정엄마 얼굴도 못 볼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출산 후 방문할 산후 조리원에 대한 고민도 크다. 가장 걱정인 건 3주 정도 신청해둔 산후도우미를 취소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조카들이 태어났을 때도 외지 생활 중이라 정말 아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평생 기저귀 10번도 안 갈아본 사람인데...


나는 산전휴가를 1월 17일부터 시작했다. 출산 예정일은 3월 28일, 한 해 연차까지 모두 붙여 조금 일찍 시작했던 이유는 한동안 육아로 정신없을 나를 위한 시간과 틈을 조금이라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임신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꾸준히 해왔던 생각이었다.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고 회사일로 망가진 몸을 조금이라도 되돌려 놓는 것을 차근차근하고 싶었다. 


지금은... 임산부 요가는 2주간 휴강이고, 도예 수업은 원한다면 환불을 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국 채색화 선생님은 꾸준히 수업을 계속하신다고 하셨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거리에 있는 곳이기에 고민이 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인근에는 신천지 기도원도 있다. 남편과 함께 아이를 위해 준비했던 출판 프로젝트만이 온라인의 힘으로 그나마 예정대로 진행 중이다.( https://tumblbug.com/promise20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포스팅으로.)


계획이 틀어졌다는 불만은 배부른 투정일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출근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타이밍일 것이다. 그렇지만 차곡차곡 몇 개월 동안 준비했던 아이와의 만남이 뜻하지 않은, 그것도 매우 불온한 변수로 흔들리고 있는 지금 나는 스스로의 감정이 바닥을 치지 않게 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나름 바지런히 집안일도 해보고, 창문도 활짝 열고 마주 앉아 작은 책상 위에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노트북을 두들겨본다. 결국 이번에도 뜻하지 않게 마주한 인생의 진리. 세상 내 맘대로 되는 것 없다.


그래도 욕은 좀 내 맘대로 해볼까 한다.

이 염병할 염병.


고상한 임산부는 아니라서 스트레스도 풀 겸 쓰기도 하고 되뇌어 보기도 한다. 마치 좀비 영화처럼 이 시대를 풍미하는 전염병은 각종 사회문제와 함께 어우러져 여러 사람들의 복장을 득득 긁는다. 안타까움, 분노, 걱정... 온갖 감정의 찌꺼기가 휘몰아치는 지구촌. 그래도 어찌하리...,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나가야 하리라.


한없이 소소한 개인이지만, 내 인생에서 나름의 전환점이 될 인생 2막을 앞둔 임산부로서 넋두리를 남겨본다. 그리고 일선에서 고생하시는 분들과 나와 우리 가족을 걱정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정말 갈아넣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신다. 정말 감사드릴 뿐이다. 그리고 저출산 시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부모 됨을 결정한 용감한 예비 엄마 아빠들, 불안하시겠지만 힘내시고 건강하게 소중한 생명을 만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팔락팔락 열에 들떠 벌렁거리는 가슴을 좋아하는 노래 한 구절, 달달한 간식 한 조각, 잠깐의 수다, 그리고 이런 두서없는 넋두리에 기대어 잠재워본다. 어쨌든 우리 아가는 이 어수선한 시국에도 엄마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찾아올 테니까 씩씩하게 기운을 내보자. 우선 맛있는 점심부터 만들어 먹어야지.


-손수 만든 손소독제는 외출 시마다 요긴하게 쓰고 있다-


덧. 저처럼 요가원이 휴원하여 임산부 요가를 다니지 못하시는 산모 분들께 유튜브 요가채널 '모나요가'를 추천한다. 특히 나같은 요가초보에 귀차니즘 산모는 영상 중 '앉아서 하는 20분 요가'(https://youtu.be/DVkjQ4fYDTM)를 강추하고 싶다. 순산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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