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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너스 : 죄인들>

자유를 향한 갈망

by chiimii

*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이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씨너스 재밌어!” “장르게 뭔데?” “공포, 드라마, 음악, 오컬트, 스릴러, 액션…”


보통 이렇게 다 섞어 놓으면 맛없는 비빔밥이 되기 일쑤인데 어느 하나 빼놓고 이야기하기 싫을 정도로 그것들을 잘 담고 있고, 또 그게 전혀 버거워 보이지 않는다. 배경은 1930년대, 노예로서 해방되었지만 흑인이 여전히 차별받고 있는 시기다. 기차역에 백인전용칸이나 백인전용화장실이 보여주고 있듯이. 마이클 B.조던이 맡은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이 고향이었던 미시시피주로 돌아온다. 그들은 시카고에 있는 갱단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백인의 땅을 사들이고 오직 흑인만 들어오는 술집 주크 술집을 오픈한다. 오픈한 바로 그 날, 1932년 10월 15일의 이야기다.

블루스의 역사나 1930년대 시대배경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었으면 더욱 재밌게 볼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 대한 이해까지 있으면 더더욱. 그러나 나처럼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우선, 눈과 귀가 즐겁다. 흑인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진 쫙 펼쳐진 목화밭, 그리고 가운데 난 찻길. 찻길을 달리는 차와 그 안에서 기타 치는 새미. 울려 퍼지는 노래와 기타연주만으로 그 넓은 땅의 주인이 된 것 같은 자유가 느껴진다. 배경음악의 박자에 영화 속 음향이 맞춰질 때의 짜릿한 쾌감도 있다. 땅을 사드리기 위해 쌍둥이 형제가 백인을 만날 때, KKK 백인이 끌고 오는 차 엔진소리는 배경음악에 맞춰 리듬감을 더한다. 이 짜릿한 의도는 그 뒤로도 몇 번 나온다. 스모크의 아내 애니가 성냥불을 탁,탁,탁 붙이는 장면. 주크 술집에서 속임수를 쓴 자를 퍽,퍽,퍽 혼내줄 때 장면. 계속해서 쌓인 오감의 즐거움은 주크에서 새미의 노래와 기타에 맞춰 흑인들이 다 같이 춤출 때 절정에 치닫는다. 그들의 음악은 영화 도입부 내레이션처럼 과거의 사람과 미래의 사람, 그리고 죽은 사람까지 불러들인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담겨있다. 마치 우리나라 전통 민요들에 한이 담긴 것처럼. 델타슬림은 차에서 백인들로부터 죽음을 당한 흑인의 일화를 이야기하다 화를 억누르며 자연스럽게 그 감정을 노래로 승화시킨다. 노래는 구슬프기보다는 신난다. 그게 그들이 아픔을 승화하는 방식이다.

쌍둥이 형제 조카 새미는 목사 아들이다. 목사인 아버지는 블루스 음악을 연주하는 새미를 반대한다. 새미가 주크에서 부르는 노래는 그런 아버지에게 거짓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가사를 담고 있다. 새미의 노래와 연주는 결국 뱀파이어들을 부르기까지 한다. 그리고 인간 대 뱀파이어는 밤새 전쟁을 하고, 새미는 몇 번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그리고 찾아간 아버지는 새미에게 기타를 버리라고 설득하지만, 새미는 결국 기타를 들고 떠난다. 음악을 택한다. 그것은 새미에게 곧 자유와 같다. 새미에게 주크에서 연주했던 그 날을 먼 훗날에도 잊지 못한 최고의 날이다.

쌍둥이 형제 중 스모크도 마지막에 약을 먹으려다(죽음 아니면 마약?) 결국 총을 들고 KKK 백인들을 쏴 죽인다. 어쩌면 뱀파이어들이 했던 말처럼 고통은 약을 먹는 것으로(죽음 또는 쾌락으로) 끝낼 수 있지만 맞서 싸운다. 스모크에게는 그것이 자유다. 인물들은 제 방식대로 자유를 갈망한다.

음악영화나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갑자기 인물이 노래를 불러도, 뱀파이어가 튀어나와도 전혀 뜬금없지 않고 자연스럽게 거기에 빠져든다. 인물들이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살아온 세상이 쭉 보이면서 연민과 애정의 감정이 든다. 인종차별의 고통과 비극을 담은 영화는 맞지만 그 외에도 볼거리가 너무 많다. 영화를 보고나서 며칠 동안 ‘어? 그건 뭐였을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 그들이 자유를 갈망하고 삶을 즐기는 방식이 영화관에서 나온 뒤에도 오랫동안 내 눈과 귀에서 떠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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