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완전한 행복>을 읽고
영화 <매트릭스>가 많이 생각난 책이다. 매트릭스 설계 초기, 완전한 유토피아에선 인간이 적응하지 못했다는 대사가 떠올랐다. 평소 좋아하는 주제라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 읽었다. 메타버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싸이월드 미니미처럼 살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체는 썩어 없어지겠지만 우리의 삶과 자아는 데이터가 되어 가상현실에서 썩지 못하고 영원히 존재할 수도 있겠다고. 신기하게도 남편과 이런 얘길 하다 보니 ‘불멸할 수 있다는 행복’보다 ‘죽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상했다. 몸 어딘가 조금만 아파도 건강염려증 환자처럼 검색창에 각종 병명을 검색하면서 두려움에 휩싸이는 내가 불멸이 두렵다는 게.
고통도 없고, 죽음도 없고, 두려움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불행한 일 같은 것도 없는 세계는 정말 행복할까. 처음부터 모순적이었다. <영원한 천국> 속 인물인 해상이 루게릭병으로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의식만 남아 몸 안에 갇혀 사는 것을 보면서 얼른 ‘롤라’라는 영원한 천국으로 가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그런 곳이 과연 행복할까 하는 질문이 무의식 속에서 계속 튀어나왔다. 행복이라는 건 결핍에서 오고 삶이라는 건 죽음이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거니까.
현실에서 경주의 삶은 이렇다.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그 충격으로 방 안에 틀어박혀 안 나오는 동생 승주를 경주는 때렸고, 승주는 경주가 술 취해 뻗은 사이 가출했고, 며칠 뒤 주검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승주가 그랬던 것처럼 경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좋은 게 하나 있다면 승주를 조금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나를 집안에 가둔 건 승주의 죽음으로 인한 죄책감이나 슬픔이 아니었다. 삶의 불운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좌절감도 아니었다. 불공평한 운명에 대한 분노 역시 아니었다. 그런 건 살고 싶어 할 때에나 생기는 감정이었다. 살려는 마음이 사라지면 평화가 온다.”
이쯤 되면 삶에 대한 원망과 동생에 대한 죄책감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싶은데 경주는 살기 위해 일어난다. 부동산에서 온 전화 때문이었으니까 살기 위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일어난 김에 살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움직일 때 더 살고 싶어지는 기분은 모두가 잘 아니까. 결국 경주는 아버지와 동생 승주와 살던 집을 빚내서 산다. 살기 위해 빚을 내고 갚기 위해 돈을 벌고자 여정을 떠난다.
“살 수 있는 방법도 알아냈다. 내가 가장 열렬하게 살았던 시절이 언제였던가 짚어보자 답이 나왔다. 아버지 덕에 빚쟁이가 됐을 때 나는 질주하는 기차처럼 살았다. 빚을 져줄 아버지가 없는 지금은 스스로 빚쟁이가 되어야 했다. 그 선로가 이 부동산 사무실 안에 깔려 있었다.”
그렇게 해서 삼애원이라는 노숙자 보호시설에 보안요원으로 들어가고, 그 안에서 제이를 만난다. 제이는 해상과 사랑하는 사이다. 두 사람은 이집트 사막 여행 중에 만났고, 사랑에 빠졌고, 해상은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을 제이에게 말했다. 어떻게 보면 삶에 큰 욕심 없이 죽을 날만 기다려온 해상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리고 해상의 병을 들은 그는 그녀에게서 도망가지 않고 그녀를 영원한 천국인 ‘롤라’에 보내기로 결심한다.
“내 무의식이 나와 그 여자를 분리하지 못해. 온전히 내 자아만 있어야 하는 곳에 그 여자가 들어와 살고 있다고. 그 여자가 고통스러워하면 나도 고통스럽고, 그 여자가 슬프면 나도 슬프고, 그 여자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고.”
제이는 해상에게 영원한 천국인 ‘롤라’ 안에 ‘드림시어터’를 만들도록 프로그래밍을 가르쳤을까. 롤라 극장이 자신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삶을 구현해주는 극장이라면, 드림시어터는 자신의 실제 인생을 두 번째로 살게 되는 극장이다. 이전에 살았던 삶이 아주 만족스럽고 영광스러운 소수의 사람은 수요가 있을까. 경주는 해상에게 36쪽부터 백지로 채워진 드림시어터를 요구한다. 원칙적으로 드림시어터는 의뢰인의 죽음까지 설계해줌으로써 최종적으로는 롤라 세계로 다시 돌아오기 마련인데 경주의 요구에 따르면 공백의 드림시어터는 설계자인 해상도 어떻게 될 줄 모르는 것이다. 영원히 그 드림시어터에 갇힐지도 모른다. 결국 해상은 그의 요구를 들어주되 자신이 제3자의 드림시어터를 설계해 경주와 만나기로 결심한다. 드림시어터에서 경주를 만나 그의 밝혀지지 않은 3년을 알아내고 그를 다시 롤라로 데려와주려 한다.
밝혀지지 않은 3년에서 경주의 또 다른 고통을 마주한다. 처음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고, 결혼을 하고 뱃속에 아이까지 생겼는데 사고로 그녀가 죽는다. 신은 어디까지 경주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건지. 그의 드림시어터에는 새로운 여자 ‘윤희’가 등장한다. 삼애원 때처럼 경주는 윤희를 구하기 위해 또 위기에 처하기를 반복한다. 경주에게는 ‘야성’이 있다. 견디고 맞서고 이겨내려는 욕망. 그것을 해성은 ‘야성’이라 했다.
“스스로 봉인을 풀고 깨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어떠한 운명의 설계로도 변질시킬 수 없는 항구적 기질이라는 점에서. 이제 경주는 롤라로 돌아올 수가 없게 됐다. 스스로 자신을 죽이지 않는 한 끝나지 않는 가상세계의 길을 떠돌며 인간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상처 입고, 고통받고, 좌절하고, 일어서고, 다시 사랑하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경주의 드림시어터에는 상처, 고통, 좌절이 있고 사랑도 있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도 있다. 빈 페이지인 그의 드림시어터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과 다를 바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리의 남은 인생과 같다. 그 길에는 불행도 있고 불안도 있겠지만 견디고 맞서고 이겨내려는 욕망도 있을 것이다. 그 욕망이 있는 자는 롤라라는 영원한 천국에서도 공백으로 그려진 드림시어터를 선택할 것이고, 바로 그 야성이 있는 우리에게 ‘삶’은 주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