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재개봉 관람
<인생은 아름다워(감독 로베르토 베니니)>는 내 인생 영화다. <인생은 아름다워>와 비슷한 주제, 같은 시대배경인 <쉰들러리스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피아니스트>, <페르시아어 수업>을 전부 좋아하지만 <인생은 아름다워>는 나의 유일무이한 원탑이다. 보통 좋아하는 영화는 열 번도 더 넘게 본 편인데 이 영화는 딱 한 번보고 다시 본 적이 없다. 처음 봤을 때 먹먹함과 여운이 너무 오래 가서 N차 관람이 두려웠다. 그러던 중 영화관에서 재개봉 했다는 소식을 듣고 예매를 했다. 1997년도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보는 건 또 언제올 지 모르는 기회였다.
많은 드라마와 책, 그리고 좋은 영상에서 말한다. 인생은 고통이 있고 슬픔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거라고, 살아야 한다고. 정말 좋은 말이다. 그런데 나한테는 와 닿지 않았다. 고통이고, 슬픔인데 왜? 설득력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막강한 접속사를 들이 대는 느낌이다. 좋은 사람들, 좋은 영상이 전부 그렇게 말하고 있기에 나만 빼고 세상 사람들 전부 삶은 무조건 아름답다는 것에 동의하는 걸까 초조함까지 들 때가 있다. 대체 그들이 살아온 삶은 뭘까. 요즘은 나도 그 아름답다는 삶에 따라가기 위해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계속 고뇌한다. 삶이 아름답다는 걸 진심으로 깨닫고 싶은 욕망이 계속 솟구친다. 그럼 나도 주변 친구들처럼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내 아이에게 주어진 삶에 ‘희(喜)’와 ‘낙(樂)’ 만 있는 게 아니라 ‘노(怒)’와 ‘애(哀)’가 계속해서 존재한다 해도 아름다운 것이라며 무조건적인 축복을 할 수 있을까.
<인생은 아름다워>의 시대적 배경과 현실은 참담하고 암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귀도는 아들 조슈아에게만은 그렇게 보이지 않길 바라며 게임이나 놀이를 하는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 상점을 모으면 조슈아가 좋아하는 탱크를 받을 수 있고, 저 화난 사람들 몰래 꽁꽁 숨어야 하며, 언제든 게임을 포기하면 집에 갈 수 있고…. 아들을 위해 행복한 척 연기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관객들의 눈물버튼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렇게 해서 주어진 조슈아의 삶이면 정말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도의 삶도 누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남들은 애지중지하는 비싼 실크를 비오는 날 계단에 레드카펫처럼 깔고, 수용소 안에서 아내가 들리게 아들과 함께 방송 스피커에 대고 말하고, 그녀가 듣게끔 추억이 있는 노래를 크게 틀기도 한다. 그 모든 게 즐거운 연극 같고, 아름다운 동화 같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의 인생의 장르를 바꾸려고 애쓰는 한 남자의 지난한 노력이 너무나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 정말이지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하는 생각과 함께 형용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휘몰아치면서 내가 세상에 태어났고 살아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실감나게 한다. 그리고 주어진 내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기를 간절히 소망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