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인의 삶>
영화 <타인의 삶>은 1980년대 동독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동독은 개혁개방정책에 소극적이었고, 철저한 감시사회를 유지했다. 비밀경찰인 비즐러는 당의 목표가 즉 자신의 목표였다. 비즐러는 당의 지시대로 극작가인 드라이만을 도청, 감시하게 된다. 드라이만은 동독의 감시체제 안에서 예술로 저항하는 인물이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삶을 도청하면서 변화한다. 영화 초반과 후반, 비즐러를 연기한 배우의 눈동자가 다르다. 어떻게 눈동자를 연기할까 감탄할 정도로, 초반 냉혈한 감시자 비즐러의 눈동자는 공허하다. 점점 드라이만의 삶에 동화된 비즐러의 영혼은 예술과 사랑으로 채워진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이 그의 연인 크리스타와 사랑을 나눌수록 공허함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창녀를 부르지만 그들의 사랑과는 확실히 다르다. 사랑을 흉내 낸다 한들 그의 영혼은 채워지지 않는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책상에 놓인 시집을 훔쳐와 읽고, 그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들처럼 시를 듣고, 음악을 듣고, 연민한다. 인간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변화한 비즐러는 당을 보며 회의감을 느낀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이 당에 잡혀가지 않도록 그의 타자기를 숨긴다.
인간은 체제 이전에 존재한다. 인간은 유대하고, 사랑하고, 연민 하며 존재를 증명한다. 감시체제는 인간을 객체로 삼지만, 누군가의 삶과 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 역사에서 수없이 비인간적 체제를 볼 수 있지만, 인간다움의 불씨는 완전히 꺼진 적이 없다. 비즐러의 눈동자, 그리고 비즐러에게 바치는 드라이만의 책이 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