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를 보고.
“현실이라고 믿었던 세계는 가짜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진짜일까? 꿈에서 영원히 깨지 않는 것이라면? 매트릭스는 인류와 인공지능 전쟁에서 인류가 실패하면서 기계들이 만든 세계이다. 컴퓨터 프로그램(기계)들은 인간을 에너지로 쓰기 위해 가상현실을 만들었다. 인간은 매트릭스 세계 안에서 재배된다. 프로그래밍에 의해 살아간다. 내가 먹고 있는 이 케이크는 진짜 케이크일까. 달달한 맛의 촉촉한 촉감으로 프로그래밍된 케이크일지도. 여기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 가상현실 매트릭스를 설계할 때 기계들은 여러 번 실패했다. 고통이 없고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로 설정했을 때, 인간들은 그것에 적응하지 못했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고통과 불행을 통해 현실을 정의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매트릭스는 적당한 고통과 불행이 있는 세계로 다시 설계되었다는 것.
인간이 고통과 불완전함을 통해 현실을 인식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고 실제 우리 삶을 떠올리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은 행복으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다. 어느 정도 불안과 불행을 느끼고 그것을 극복해내려는 의지로 살아가는 게 우리들 인생이 아닐까.
“빨간약과 파란약”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을 건넨다. 파란약은 그냥 지금처럼 살아가겠다는 선택이다. 파란약을 선택하면 컴퓨터 안의 삶이 진짜인 것처럼 믿으며 기계들이 적당히 설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빨간약을 먹으면 진실을 마주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이 가짜이고, 진짜 현실은 매트릭스 밖의 세상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은 불편하다. 불편한 진실 앞에서 인간은 그것을 회피하고 편안한 삶을 영위하거나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알아내려 싸우거나 둘 중 하나다.
조지오웰의 <1984>에서 우리는 현실에 순응하고 소소한 일상에 집중해서 살아가면 문제될 것이 없는 세상 같다. "나의 생각만 바꾼다면 모진 고문을 당하지 않을 수 있고, 당에 지배당해서 비참하게 살고있다는 생각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단지 내 생각만 바꾼다면." 빨간약을 먹고 현실을 직시하며 저항하고 고통스러워할 것인가. 파란약을 먹고 디스토피아 안에서 아무것도 모르는척 안락하게 살아갈 것인가. 역사는 언제나 진실을 추구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만들어졌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나의 2024년이다. 나는 30여년간 파란약을 먹고 살아왔다. 인생이란 뭘까. 어떻게 살아야할까 고민하는 것은 꽤 불편하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가끔 맛있는 것을 먹고, 도파민 터지는 TV프로그램을 보고.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는 것. 그것은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게 했다. 빨간약을 먹고 진실을 마주한 네오처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가짜처럼 느껴진다. 요즘 나의 삶은 빨간약에 더욱 가깝다. 고뇌하는 것은 괴롭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것은 꽤 불안하다. 나는 여생을 '진짜'로 살고 싶다.
“오라클의 존재”
오라클은 확실한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항상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선택은 인간이 한다. 인간에게 자율성과 주체성을 주는 것이다. 앞서 스미스가 말했듯이 인간들은 '완전한 행복'만 존재하는 곳에서는 살 수 없는 것처럼 '수동적'으로만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매트릭스 세계에서도 인간에게 자율성을 주는 프로그램인 '오라클'을 만든 게 아닐까. 인간이 자율성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것을 알기에 그들에게 선택권, 주체성,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매트릭스 세계의 균형을 잡기 위한 것이다.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주체적이고 야성(완전한천국에서 말했듯이)이 있는 동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