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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왜 저렇게까지 해?

어쩔 수가 없다..

by chiimii

요즘 남편과 가장 재밌게 보는 드라마가 김부장이다. 풀 타이틀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외우지 못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볼 수 있는 유형의 인물들을 볼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공감이다. 어느 직장이든 있을 만한 ‘김부장’을 아주 현실적으로 잘 만들어 놨다. 김부장뿐만 아니라 아부 직원, 1인분만 하고 재테크하는 직원, MZ직원, 계산적이고 속을 모를 팀장 등등. 1~2화까지만 해도 과거 함께 일했던 김부장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아, 왜 저래~“ 욕하면서 한편으로 속이 시원하게 뚫렸다. 그런 길티 플레저를 느끼다가 회차를 거듭할수록 김부장이 미생의 장그래로 보이면서 내가 간절히 응원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직장을 다니며 어떤 관리자급 상사들을 보며 생각했다. 특히 이 곳에 자아와 삶 전체를 의탁한 듯이 모든 걸 쏟아 붓는 그들을 보며. 왜 저렇게까지 하지? 대체 왜?


가끔은 불쌍하다고까지 생각했던 그런 내 생각이 지금은 오만하고 경솔하게 느껴진다. 영업1팀 팀장에서 아산 공장 안전관리팀장으로 발령 난 게 뭐 저렇게까지 좌절할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어쩔 수가 없다>에서 이병헌(만수 역)이 제지회사에 재취업하기 위해서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는 것을 보고 ‘뭐 저렇게까지?’라고 반문할 수 있다. 댓글부대로 일하며 큰돈을 만지던 남자가 인형탈을 쓰고 돈을 버는 일을 다시 못 하는 것처럼(장강명 저 <댓글부대>), 다른 공부를 하겠다며 퇴사한 내가 시간적으로 여유 있어도 카페 아르바이트는 죽어도 못하겠는 것처럼. 20년산 위스키 먹던 사람이 싸구려 못 먹는 것처럼. 이미 가져본 적 있던 체면과 돈, 명예, 자존심은 아예 가져본 적 없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를 <기생충>과 비교하는 평가를 많이 봤는데, 두 영화에서 다루는 인물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기생충>의 송강호(기택 역) 가족은 피자박스를 접으며 삶을 연명할 순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의 이병헌(만수 역)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테니스를 안 친다고, 개 두 마리를 부모님께 맡겨놓는 다고, 마당 있는 2층짜리 주택에서 살지 않는다고, 제지회사가 아닌 택배 일을 한다고... 밥을 못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만수에게 그런 삶을 유지하는 것은 <기생충> 기택이 입에 풀칠하는 것만큼 생존이 달린 문제다.


김부장에겐 대기업 영업부장이고, 서울에 부동산도 있고, 아들 대학도 보낸 그 타이틀이 전부인 것이다. 25년 성실히 회사에 몸 바친 자신을 공장 안전관리팀장으로 좌천해버려도 죽어도 나가서 치킨집은 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존심과 체면이 전부인 고집불통 김부장을 응원하게 된다. 왜 잘됐으면 좋겠고, 창피당하지 않기를 바라게 될까. 누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사정이 있다고. 김부장 드라마를 그 때 봤더라면 지금 머리에 생각나는 김부장들을 더 잘 이해했을 수도. 존경했을 수도? 직장보다 내 삶이 중요했던 MZ세대 나에게 이 드라마는.. 본격 세대갈등 해소(?) 드라마다. 열심히 사는 그들을 위대하다고 말해주고 싶은. 그게 고작 자존심이든 체면이든 무슨 이유든 김부장을 너무도 애절하게 잘 그려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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