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유명한 김춘수 선생님의 시 〈꽃〉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는 꽃의 이름을 몰라 이름을 불러주지는 못해도 사진을 찍어 내 마음에 꽃이 되게 한다.
사진을 찍을 때 그 사진에 담긴 풍경이나 사물은 나에게 의미가 되고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꽃 옆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 사람이 주인공이고 꽃이 들러리나 소품이 된다.
이런 경우 그 찍은 사람도 그 사람을 보는 사람도 꽃을 의미로 기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성스럽게 마음을 담아 꽃을 찍으면 그 마음에 꽃이 주인공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사진을 보는 이도 비로소 꽃의 아름다움을 진지하게 느낄 수 있다.
우리도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들러리나 소모품처럼 여겨지는 것이 유쾌하지 않다.
아마 꽃들이 감정이 있다면 자신을 들러리 삼아 찍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주인공으로 찍어주는 사람에게 더 아름답게 보이고 싶을 것이다.
꽃 한 송이를 찍어도 나를 향해 수줍은 미소를 건네는 꽃의 진심을 마음에 담는 자세로 사진을 찍어보라.
그 사진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내 인생이 시들어 간다고 여겨질 때 다시 아름답게 피어날 희망이 되기도 한다.
글을 쓰는 것이 진심을 답은 의미 부여의 작업이 듯 사진을 찍는 것도 그렇다.
사진을 찍는 것은 내가 무심코 바라보던 것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마음에 그 만남을 기억하는 것이다.
어떤 만남은 처음 만나도 오랜 친구 같고 또 계속 만나고 싶은 만남이 있다.
마음에 울림을 준 것들에 대해 사진을 찍는 것은 그 대상과 계속 만나는 것과 같다.
핸드폰에 용량을 정리하기 위해 사진을 지울 때가 있다.
아무리 사진을 지울 때도 이미 내 마음에 의미가 된 사진은 지우지 않고 계속 보관을 한다.
이미 그 사진들은 내 마음에 중요한 의미가 되고, 내 마음을 새롭게 하는 기억하고 싶은 만남이 된 것이다.
최근에 사진작가가 아니어도 SNS를 하면서 멋지고 의미를 담은 사진을 공유하는 경유가 많다.
사진을 SNS에 공유하기 위해 찍더라도 사진을 찍는 그 시간에 마음이 먼저 행복하고 위로를 받기 원한다.
그러면 그 사진이 많은 사람에게 행복함과 위로를 주고 때로는 무기력한 마음에 활력을 주기도 할 것이다.
사진은 내 시선으로 마음을 담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낮은 자존감으로 무너져 있는 사람이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고 인정하기 시작할 때 다시 성장할 수 있다.
사실 사진을 찍을 때 나는 그 대상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의미를 부여한 사진을 통해 누군가에게 작은 감동과 위로를 건넬 수도 있다.
의미를 부여하는 사진 찍기는 나도 남도 행복하게 하는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