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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 소설
08화
거기만 길이 아니다 (2)
새로운 길 앞에 서다
by
동그라미 원
Oct 29. 2025
거기만 길이 아니다 (2)
제2부: 새로운 길 앞에 서다
"요리사? 영훈아, 너 요리 한 번이라도 해봤어?"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서리가 내렸다. 방금 전까지 따뜻하던 저녁 식탁의 온기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아버지는 숟가락을 내려놓는 소리조차 차갑게 만들었다.
어머니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버지는 식사를 멈추고 영훈을 노려봤다.
식탁 위 김이 모락모락 나던 국그릇마저 식어가는 것 같았다.
"3년 동안 공부했는데, 이제 와서 요리사? 그게 말이 되냐?"
"어머니 아버지... 하고 싶어요."
"하고 싶다고 다 되는 줄 아냐? 요리사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잔소리는 길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영훈의 마음은 새로운 무언가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영훈은 부모님께 타협안을 제시했다.
"6개월만 시간 주세요. 제가 정말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볼게요. 안 되면... 다시 생각해 볼게요."
부모님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학원비는 알아서 벌어야 한다는 것.
영훈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밤 11시부터 아침 6시까지. 낮에는 요리 학원에 다녔다.
영훈의 일차 목표는 한식과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었다.
요리 학원 첫날, 영훈은 앞치마를 두르고 칼을 잡았다.
강사가 시범을 보였다. "자, 이렇게 썰어보세요."
영훈이 칼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칼질을 시작했는데, 무가 삐뚤빼뚤 잘렸다.
옆 학생은 이미 절반을 끝냈는데, 영훈은 겨우 몇 조각 썰었다.
"아, 이건 너무 두꺼워요. 다시 해보세요."
강사의 말에 영훈의 얼굴이 붉어졌다. '역시 안 되는 건가.'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유튜브를 보며 칼질 연습을 했다.
당근, 감자, 양파. 손이 베이고 물집이 잡혔지만, 매일 밤 30분씩 연습했다.
한 달이 지나자, 칼질이 조금씩 나아졌다. 두 달째, 강사가 영훈의 썰기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늘었네요. 집에서 연습했죠?"
"... 네."
"계속 이렇게 하면 돼요."
작은 칭찬이었지만, 영훈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학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영훈에게는 명확한 기준점이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할머니의 김치찌개였다.
일주일에 한 번, 영훈은 할머니 백반집을 찾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아껴, 김치찌개를 시켰다.
"영훈아, 또 왔네. 요즘 얼굴이 좋아 보인다."
"공무원 시험 그만두고 요리 배우고 있어요."
"그래? 잘했다. 네가 좋아하는 일 하는 게 제일 좋은 거야."
할머니는 언제나 영훈을 지지해 주었다. 판단하지 않았고, 평가하지 않았다. 그저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영훈은 김치찌개를 먹으며 맛을 분석했다. '이 깊은 맛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묵은지의 숙성도? 고기의 부위? 끓이는 시간?'
학원에서는 프렌치 오믈렛, 파스타, 스테이크를 배웠지만, 영훈의 마음속 기준은 항상 할머니의 김치찌개였다.
요리 노트에는 레시피 대신 이런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진심으로 위로하는 맛이란?'
'소박하지만 따뜻한 정성'
'기술이 아니라 마음'
다른 학생들이 고급 레스토랑의 플레이팅을 따라 할 때, 영훈은 할머니의 김치찌개에서 '진정한 요리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6개월이 지났다. 부모님과의 약속 기한이었다.
"영훈아,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영훈은 자신이 목표한 양식과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6개월 안에 땄다.
하지만 부모님과 약속한 시간까지 미리 자격증 딴 것을 말하지 않고 기다렸다.
아버지가 물었다. 영훈은 조리사 자격증과 함께, 학원 내 경연대회에서 받은 장려상 상장을 내밀었다.
"저, 계속하고 싶어요. 국내 요리 대회에 나가볼게요."
어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열정을 가지고 열심을 내는 아들이 속으로 대견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네가 열심히 하니 좋기는 한데 요리사가 돈이 되긴 할까..."
"안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저는 이제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생겼어요."
부모님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영훈은 처음으로 부모님께 고개를 깊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날 밤, 영훈은 할머니 백반집에 갔다. 할머니에게 그간의 일을 이야기했다.
"할머니, 저 요리사 할 거예요. 할머니처럼 사람들한테 위로가 되는 밥 만들고 싶어요."
할머니는 주름진 손으로 영훈의 손을 꼭 잡았다.
"그래, 잘했어. 네 길을 찾았구나."
영훈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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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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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에필로그: 다시 길 위에 서다
07
거기만 길이 아니다(1)
08
거기만 길이 아니다 (2)
09
거기만 길이 아니다 (3)
10
거기만 길이 아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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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평범함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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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2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살면서 깨닫고 어려움을 극복한 마음들을 글을 통해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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