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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만 길이 아니다(1)

by 동그라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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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만 길이 아니다(1)



제1부: 또다시 실패, 그리고 김치찌개 한 그릇



영훈은 마이크 앞에 섰다. '흑백요리사 시즌 3' 우승 트로피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묵직했다. 스튜디오의 화려한 조명이 눈부셨지만, 3년 전 자신의 방을 가득 채우던 어둡고 습한 절망이 먼저 떠올랐다.

우승의 감격보다, 길을 잃었던 지난날의 회한이 가슴을 먼저 눌렀다.

"영훈 씨,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요리사의 길을 택하게 되셨나요?"

아나운서의 질문에 영훈은 잠시 눈을 감았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2016년 봄. 세 번째 불합격.

모니터 앞에 앉은 영훈의 손이 마우스 위에서 굳어졌다. 불합격. 또.

심장이 쿵쿵 울렸지만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텅 빈 것 같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영훈에게 세상의 모든 길은 오직 '9급 공무원 합격'이라는 하나의 푯말만을 가리키는 듯했다. 안정적인 직업, 주변의 인정, 평범하고 무탈한 삶. 그것만이 유일한 정답이었다.

친구들은 대학에 가거나 취업했다. SNS에는 MT 사진, 회식 사진, 여행 사진이 올라왔다. 영훈은 그걸 보지 않으려 애썼다. 독서실 책상, 기출문제집, 형광펜. 그것만이 영훈의 세계였다.

"영훈아, 올해는 꼭 붙을 거지? 엄마 친구 아들은 한 번에 붙었다던데." 어머니의 말은 격려가 아니라 채찍처럼 느껴졌다.

"... 노력하고 있어요."

노력은 했다. 하루 12시간씩 앉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간이 실력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집중이 안 됐다. 같은 문제를 열 번을 봐도 다음 날이면 잊어버렸다. 머릿속은 늘 '만약 또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으로 가득했다.


세 번째 실패 후, 영훈은 방문을 걸어 잠갔다.

며칠이 지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커튼을 쳐서 빛이 들어오지 않게 했다.

핸드폰은 꺼두었다. 밥을 먹으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렸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할까. 3년을 버렸는데 아무것도 없네.'

'이제 뭘 해야 하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사흘째 되는 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영훈은 거의 본능적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씻지도 않고, 후드티만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걸었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평소 종종 가던 '할머니 백반집'으로 향했다. 간판도 낡고, 외관도 허름했지만, 밥은 정갈했다.

시험 공부하던 시절, 가끔 밥 먹으러 갔던 곳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식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영훈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

"어이쿠, 영훈이 왔네. 오랜만이다."

주인 할머니는 늘 그랬듯 인자한 미소로 그를 맞았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앞치마를 두르고 냄비를 휘젓고 있었다.

영훈은 아무 말 없이 구석 자리에 앉았다. "... 김치찌개요."

"알았어. 금방 줄게."

묵은지의 깊은 맛과 돼지고기의 고소함이 어우러진 뜨거운 김치찌개가 상에 올려졌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영훈은 숟가락을 들었다.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혀가 아닌 가슴이 먼저 반응했다.

메마른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맛있었다. 아니, 맛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따뜻했다.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시험 준비하느라 수고 많았지? 고생했어."

할머니가 반찬을 더 가져다주며 말했다.

"오늘은 공짜니까 먹고 다시 힘내."

그 한마디에 영훈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참으려 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어깨가 들썩였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영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날 영훈은 식당 구석에서 한참을 울었다. 할머니는 그저 옆에 앉아 있어 주었다.

울음이 멈췄을 때, 영훈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김치찌개는 식었지만, 영훈은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천천히 먹었다.

'이 맛.'

영훈에게 할머니의 김치찌개는 '네 고통을 알고 있다'는 진심 어린 위로였다.

자신을 실패한 공무원 지망생으로만 보던 세상과 달리, 할머니는 그저 영훈의 고통을 보듬어 주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사람의 마음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것은 엄청난 스펙이나 화려한 말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한 따뜻한 마음을 담아 건네는 '밥 한 끼'일 수 있다는 것을.

식당을 나서는 영훈의 발걸음은 들어올 때와 달랐다. 여전히 막막했지만, 적어도 숨은 쉴 수 있었다.


그날 밤, 영훈은 책상 앞에 앉았다. 쌓여 있는 공무원 시험 교재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하나씩 서랍 깊숙이 넣었다.

"이제 그만하자."

영훈은 마음속의 '공무원 합격'이라는 푯말을 스스로 부러뜨렸다. 그리고 노트에 새로운 문장을 적었다.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

손이 떨렸다. 두려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처음으로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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