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단풍은 절정을 지나 마지막 아름다움을 뽐내고 낙엽으로 떨어지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구르몽의 시와 함께 낙엽은 저무는 쓸쓸함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리니 가까이 오라. 이미 날은 저물고 바람이 분다.’
나이가 들어 낙엽을 바라보면 마치 내 인생이 쓸쓸한 황혼에 접어든 모습으로 투사된다.
하지만 단풍과 낙엽은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과정이다.
단풍이 들고 잎이 떨어지는 현상, 즉 낙엽은 나무가 겨울을 나기 위한 생존 전략인 동시에,
다음 해의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고 잉태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잎이 붉거나 노랗게 변하는 단풍은 잎이 단순히 죽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겨울 동안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효율적으로 회수하는 과정이다.
기온이 떨어지고 일조량이 감소하면, 나무는 잎의 광합성 활동을 중단한다.
이때 녹색을 띠게 하던 엽록소(Chlorophyll)를 분해하고, 그 안에 있던 질소, 인, 마그네슘 등의 중요한 영양소를 줄기나 뿌리로 회수하여 저장하면서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다.
엽록소가 사라지면 잎에 존재하던 노란색의 카로티노이드(Carotenoid) 색소가 드러나 노랗게 단풍이 든다.
일부 나무는 새롭게 붉은색의 안토시아닌(Anthocyanin) 색소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일종의 햇빛 차단제 역할을 하며 남은 영양소를 뿌리로 안전하게 운반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잎이 떨어지는 낙엽은 겨울철 생존을 위한 물 손실 방지와 함께, 번식과 휴식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겨울에는 땅이 얼어붙어 물을 흡수하기 어렵다.
나무가 넓은 잎을 유지하면 수분 손실이 커져 말라죽을 수 있다.
잎을 떨어뜨림으로써 겨울 동안 수분 손실을 최소화하고 동파를 방지하는 것이다.
사람은 겨울에 두꺼운 옷을 입고 겨울을 나는데, 나무는 오히려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버티는 것이다.
잎은 나무의 광합성 공장 역할뿐만 아니라, 나무가 활동하며 생긴 불필요한 노폐물을 저장한다.
낙엽은 이러한 노폐물을 한데 모아 잎과 함께 버리는 겨울이 오기 전 집안 대청소와 같은 것이다.
낙엽과 동시에 나무는 이미 내년에 싹을 틔울 겨울눈을 가지 끝에 단단하게 만들고, 씨앗은 땅에 떨어져 겨울 동안 휴면에 들어간다.
단풍과 낙엽으로 회수한 에너지는 이 겨울눈과 씨앗이 다음 봄에 다시 힘차게 돋아날 수 있도록 잉태된 생명력으로 저장되는 것이다.
즉, 가을의 단풍과 낙엽은 나무가 자신의 몸을 비우고 정화하며 에너지를 응축하여, 다음 해의 새싹과 열매라는 새로운 생명을 봄에 피워내기 위해 에너지를 집중하는 순환의 과정이다.
우리도 인생에 늦가을을 보내며 겨울을 맞이한다.
나무에 단풍이 다 떨어지면 끝난 것이 아니듯, 나무와 같은 지혜로 겨울을 견디고 이길 것이다.
계절의 겨울은 두꺼운 옷을 입고 견디지만, 인생의 겨울에는 이제 불필요한 것들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마치 나무가 자신을 가장 아름답게 빛내주던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봄에 새 생명을 준비하듯, 이제 지나고 보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들은 과감히 버리고 진짜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 반드시 가지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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