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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팀 상시업무 3. 보고서 작성

바쁘다 중소기업 기획부서

by 청개구리씨

제조분야 중소기업에서 기획부서라고 하는 부서(또는 부서장)에서 하는 일상업무 중 3번째. 오늘은 "보고서 작성" 업무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해요.


제조분야 중소기업에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상당히 많은 회사들이 나이 든 직원들이 많고 젊은 시절 대기업 경험을 했거나 대기업에서 그만두고 중소기업으로 옮겨온 이들이 많다는 얘기를 지난번 글에서 언급했었습니다.

https://brunch.co.kr/@9ae626636ef04c0/85


기획팀 또는 기획부서라는 곳의 업무의 특성상, 다양한 보고서를 많이 보고 분석하는 것과 함께 회사에서 상시 또는 긴급으로 보고서 작성을 요청받거나 지원을 해야 할 때가 많이 생깁니다.


이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보다 보면, 과거 직무 부서가 어디인지에 따라, 혹은 대기업에 근무했던 사람들은 어떤 회사 또는 어떤 부서에 근무했었는지에 따라서 이 보고서 스타일이 천차만별인 것을 보게 됩니다.

오랜 기간 그런 방식에 익숙한 이들은 자신들이 과거 경험했던 것을 가장 훌륭한 대안으로 얘기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다른 이들의 보고서를 헐뜯으며 비아냥거리기도 하는데, 제가 보면 다 쓸데없는 짓 같은데 말이죠 ^^;




제가 젊고 파릇파릇했던 때 어떤 사장 직속팀에 차출되어 합류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합류한 것이었지만, 그곳에서는 각 부서에서 소위 잘 나가는 에이스들이 잔뜩 모여 있었습니다. 그때 두 분의 간부를 리더로 일을 배운 적이 있는데, 한 사람은 영업기획 출신이었고 한 사람은 신경영이란 전략부서 출신이었습니다.


영업기획 출신 간부님은 제가 작성하면 3~5장을 넘길 필요가 없어 보이는 간단한 보고서도 최소한 30~50장짜리로 늘려서 화려하게 써야 보고서 취급을 해 주시는 분이셨어요. 처음 배속되었을 때, 간단한 내용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있어 3장 정도로 작성해 제출했다가 설명 없이 한 10번쯤 빠꾸 먹었었지요.

요즘이야 그러면 SNS 같은데 나올 얘기지만 그때는 제 면전에 "이거밖에 생각 못하나!"라고 하면서 보고서들이 날아다니도록 던지기도 하고, "다시 작성해"라고 하면서도 어디가 잘못 됐는지, 뭘 고쳐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어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무것도 아닌 내용으로 한 달 정도 계속 깨지면서 보냈던 거 같습니다.

보고서 던지기 당할때.jpg < GPT가 그려준 그때의 추억 ^^;;; >


온갖 머리를 짜내어 10번쯤 빠꾸 먹으면서 살을 붙여서 20장이 넘어가니, 그제서야 이것저것 추가할 것과 고칠 것을 지적해 주셨고, 최종 보고서는 40장이 조금 안되었던 거 같습니다. ^^


뭐... 나름 화려한 보고서 구라빨은 그때 많이 배우긴 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썩 제게 맞지는 않는 스타일인 거 같아요.


그러다가 일 년쯤 뒤, 신경영 출신의 전략 쪽 간부 밑에 팀개편이 되면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좀 다르지만 어떤 일들이 있었고, 관련해서 보고서 제출을 요청받게 되었어서 그전에 배운 대로 열심히 보고서를 뻥튀기해서 50장 가까이를 만들어 갔습니다.

내용은 위에 있었던 별거 아닌 일은 아니었어서 50장도 채울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근데, 전략 쪽 기반의 간부님은 제가 첫마디가 "별것도 아닌 일을 이렇게 늘려서 뭐 하자는 거냐? 나랑 장난하자는 건 아니지?"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이 정도 내용이면 1장으로 사유와 배경, 대안, 이슈 이렇게 적어서 가지고 와!"라고 하시더군요.


솔직히 속으로 '우이쒸, 이거 뭐 하자는 거냐!!!'라고 화딱지가 났었지만, 50장짜리 보고서를 줄이고 줄여서 10장으로, 또 혼나고 5장으로, 다시 혼나고 3장, 다 덜어내고 줄이고 해도 제 능력에 1장으론 안돼서 2장으로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지금은 구조는 전략간부님께 배웠던 구조로 하고, 영업기획 쪽 간부에게 배웠던 풀어쓰는 방식으로 해서 짧지만 좀 주절주절 설명이 들어간 저만의 스타일의 보고서로 작성해 제출하게 된 거 같습니다 ㅎㅎ




다시 돌아와서... 제조분야가 아니어도 중소기업의 기획부서(또는 부서장)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일들이 일상 다반사로 많이 수시로 생기곤 합니다.

제 방식이 다 옳다라고 할 순 없겠지만, 저는 과거 대기업의 스타일에 매여 있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좀 깝깝한 마음입니다.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모든 일들을 결국 사장이 책임지고 결정해야 해서 맘이 바쁘기도 하고 이리저리 내부회의에 외부 업체와 회의에 은행 등 금융기관도 돌아다녀야 하고 채용 등 조직관리도 해야 합니다.

그런 사장님들이 진득이 앉아서 보고서의 문맥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그 행간의 뜻을 곱씹을 수 있는 상황이 될까요? 저도 사장을 해봤습니다만 불가능합니다!


영업기획 출신의 길고 화려한 보고서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계신 분들에게는 적합할 순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중소기업의 정신없이 살아가는 대표님들에게는 적합한 스타일이 아닌 거 같습니다.

제가 겪어본 사장님들과 중소기업의 상황에 맞춰 적절한 보고서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1) 핵심을 앞쪽에 간결하고 명확하게 작성해야 하고

2) 뒤쪽에 1번으로 보고서를 작성한 근거를 배경과 관련 업계 소식 및 내용 소스를 근거로 명확히 제시하고

3) 우리 회사에서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면 될지, 우리 회사에 어떤 의미인지를 기획 담당자의 의견을

담아 간결하지만 최대한 분명하게 표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4) 그리고 마지막에 중요한 참조 자료(뉴스 URL, 참조문서 등 소스들)에 대한 정보들이 들어간 방식으로

정리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중소기업 사장님이나 주요 리더들이 결국 해당 보고서 앞쪽의 핵심 요약 내용을 보면서 전체 내용을 명확히

인식하게 하고, 그 근거를 보여주면서 우리 회사의 상황상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보고서 작성자의

의견을 청취하게 하는 방식으로 전개하는 것이 제가 그동안 해오면서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었던 거 같습니다.


물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이들과 경영진들의 특성과 성향에 따라 이것도 정답은 없는 것입니다만, 그래도 적어도 제가 여러 분야에서 일하고 중소기업, 요즘과 같은 제조분야 중소기업에서 일해 보면서도 이 방식이 나쁘지 않은 방식인 건 알겠더라고요 ^^


작고 분주하고 모든 것들이 열악한 중소기업이지만, 기획부서에서 이렇게 분명하고 명확하게 보고서로 경영진들과 리더들을 서포트한다면 회사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


별거 아닌 거지만, 제가 아직 현직으로 잘 밥 벌어먹고사는 작은 비결이기도 해서 이렇게 적어 공유해 봅니다.


본업 얘기를 하려니 좀 재미없는 거 같아 죄송하고 그래도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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