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휴지, 사탕껍질의 공통점은?
종종 세탁기 안에서 나온다.
남편은 스티브 잡스 마냥 사시사철 검정색 반팔티를 입고, 나는 검정 러닝을 자주 입어서 우리 집은 검정색 빨래가 많다. 색깔 있는 옷이랑 같이 빨면 검은 옷에 허연 먼지가 붙기 때문에 검정색 옷만 따로 모아서 세탁한다.
아들 옷은 알록달록하고 쨍한 색이 많아 그런 옷만 모아서 따로 빤다. 속옷과 수건을 함께 빨고. 양말도 따로. 가끔 흰색옷도 따로.
도대체 카테고리가 몇 개야... 매일 세탁기를 돌려도 항시 빨랫감이 쌓여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
어쨌든 색깔옷 세탁이 끝나는 멜로디가 들려서 세탁기 문을 열었는데 작고 허연 점들이 보였다. 아아 이런. 지난 주말에 같이 한라수목원에 갔다가 아들이 코를 풀고 휴지를 바지주머니에 넣는 걸 봤는데 아무래도 그걸 그대로 빤 것 같다. 휴지는 분해되어 껌딱지처럼 옷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었다. 한숨을 한 번 내쉬고 하나씩 긁어 떼어내다가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일단 널기로 했다. 마르면 더 잘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맨투맨 하나를 집어 들고 양쪽 어깨 부분을 손으로 잡고 힘 있게 팡 털었더니 옴마나, 휴지조각들이 봄날 벚꽃 잎 마냥 날린다. 나의 웃음도 팡 터졌다. 혼자 낄낄대고 웃느라 짜증은 다 날아가버렸다.
해당내용을 저녁식사 시간에 가족회의 안건으로 올렸다.
-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니? 이건 니 탓일까, 내 탓일까?
- 둘 다요!
- 과실비율은?
- 반반이요!
거침없는 아들의 대답에 움찔한다. 난 그래도 본인이 60이고 내가 40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안일했다. 남편도 아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어차피 빨래의 최종 결정권자는 나니까 반반 잘못으로 하자. 다음부턴 너는 옷 내놓기 전에 주머니에 뭐 있는지 확인하기, 그리고 엄마는 빨래 돌리기 전에 주머니 한 번 더 확인하기로 안건은 마무리되었다.
휴지뿐만이 아니라 세탁기 안에서는 종종 마스크나 사탕껍질, 머리고무줄도 나온다. 마스크도 분해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 모양 그대로 나왔다. 사탕껍질과 고무줄도 형태가 유지되어 나오니 사실 큰 문제는 없다.
한 번은 세탁기가 다 되어서 빨랫감을 꺼내는데 토독 소리가 났다. 뭐지 싶어서 빨랫감을 흔들자 작고 투명한 구슬이 후드득 떨어지는 것 아닌가. 쎄한 느낌에 세탁기 안을 살펴봤다. 세탁기의 구멍 사이사이, 좁은 틈 사이사이에 그 구슬이 끼어 있었다. 하나를 꺼내어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먹지 마시오'에 들어있는 제습제, 실리카겔 알갱이였다. 대체 이게 왜 들어간 거지? 주머니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범인은 탑텐에서 새로 산 아들 바지였다. 바지 양 쪽 주머니에서 터진 제습제 봉투가 나왔다.
이런 식으로 배신을 하나, 탑텐?? 그런 게 있으면 말을 해줘야 될 것 아녀! 자취하던 대학생 시절부터 오랜 기간 세탁기를 돌려왔지만 새 옷에서 제습제가 나온 건 처음이었다. 나는 이쑤시개를 들고 하나하나 그것들을 파냈다. 아오 허리야.
다음 날도 어김없이 빨래를 돌렸다. 매일 돌려도 매일 쌓여있는 미스터리한 빨래산. 이번에는 어제와 같은 실수를 방지하고자 남편과 아들이 벗어놓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봤다.
남의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 느껴지는 피부감촉이 싫었다. 내 주머니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원단의 느낌이 어색하다. 먼지의 종류도 다르게 느껴진다. 손끝이 찝찝해 괜히 빈손을 탈탈 털어냈다.
이 느낌이 싫어서 그간 주머니 확인을 미룬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가 어릴 적의 나를 만나는 과정이라면 살림은 지금의 나를 비춰준다. 나는 아무래도 내가 아는 것보다 더 촉각이 민감한 사람인 것 같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으으.. 하면서 빨랫감의 모든 주머니를 확인하고 세탁기에 넣은 뒤 시작 버튼을 눌렀다. 다음번에도 내가 이 느낌을 이겨내고 주머니들을 확인하길 바라며.
** 글쓰기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초보입니다. 사랑의 라이킷과 구독은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