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하느라 바쁜데 빨래는 꼭 그때 다된다.
환장할 타이밍
화요일은 올레길 회원들과 트레킹 하러 가는 날이다. 아침에 아이를 등교시키고 평소보다 바삐 움직여 약속장소에 도착한다. 걷고, 깔깔대고, 맛집 가느라 땀냄새가 배인 채로 4시까지 집으로 세이프. 아이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에 겨우 맞췄다.
남편이 돌아오는 6시에 맞춰서 저녁식사 준비와 집안청소를 마치려면 집중해서 일해야 할 시간이다.
1. 우선 설거지부터 마치고 양파를 까고 있는데 세탁기 완료 멜로디가 들린다.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세탁기를 쾌속으로 돌린 게 끝난 거다. 다 된 빨래를 세탁기 안에 그냥 두면 꿉꿉한 냄새가 생기기 시작하니 일단 쟤를 얼른 널어야 한다.
2. 양파 까던 손을 대강 쓱 씻고 빨래를 널려고 베란다에 갔더니 어제 널어놓은 빨래가 그대로 있다. 이런.. 일단 걷어서 침대 위에 쌓아두고 빨래를 넌다.
3. 다 널고 났더니 마침 샤워를 마친 아들이 "엄마, 화장실에 수건이 없어요~"라고 외쳐서 다 마른 빨랫감을 뒤져 급한 대로 수건 두 장을 찾아 개켜서 수건장에 넣다가
4. 두루마리가 다 떨어진 걸 보았다. 왓 더... 퀘스트를 풀기 위한 퀘스트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새 두루마리를 가지러 갔는데 새로 사서 넣어둔 거라 비닐도 뜯지 않은 채였다.
5. 다시 주방으로 가 가위를 가져와서 비닐을 뜯고 두루마리를 리필해 놓은 뒤 양파로 복귀. 헥헥.
6. 메인요리 하나를 서둘러 마쳤는데 남편이 평소보다 20분 일찍 집에 왔다. 어색한 미소로 남편을 맞이한 뒤 마음은 더 급해진다. 배고프면 화내는 사람이라...
트레킹 가는 날은 집안일할 시간이 없으니 그 전날 미리 좀 해두면 좋을걸. 전날 미룬 집안일은 다음날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것도 가장 바쁜 시간에 환장할 타이밍으로 나타난다.
오늘만 이러는 게 아니라 지난주에도, 그 지난주에도 이랬다. 다음날 일정이 있으면 오늘의 달콤한 휴식 중 일부를 포기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한껏 욕심을 부린다. 그날은 그날에 할당된 휴식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선 다음날 종종거린다. 사실은 환장할 타이밍이 문제가 아니라 환장할 욕심이 문제이다.
반대로 타이밍이 기가 막힌 날도 있긴 있다. 그런 날은 각 잡고 집안을 싹 치우는 날인데, 각각의 소요시간을 계산해서 순서를 잘 짜깁기해야 한다.
살림은 얼핏 단순한 듯 보여도 유기적이고 나름대로 계획을 요한다. 먹고 자고 씻고 입고 놀고 하는 것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가. 밥 할 시간인데 설거지가 안 되어 있으면 요리하기가 싫어져서 배달음식을 시키고, 분리수거와 음식물쓰레기가 늘어난다. 아이의 숙제를 봐주려니 연필이 뭉툭해서 연필깎이를 찾으러 아이방에 갔다가 바닥에 널브러진 책 좀 치우라고 잔소리로 이어지게 된다. J인 나는 계획도 단계적으로 세우고 망할 때도 연쇄적으로 무너진다.
생각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다 대체 이 생각이 왜 시작되었는지 애초의 생각을 잊을 때도 많다. 내일 해야 할 집안일을 조금 해두는 것처럼 내일 떠오를 생각을 미리 조금 해둘 수 있을까. 어수선한 살림도, 생각도 조금은 정리를 하고 싶다.
*글쓰기를 시작한지 얼마안된 초보입니다. 라이킷과 구독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