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청소기 광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세상에. 먼지도 지가 알아서 비우고 걸레질도 알아서 하면서 스팀으로 관리도 한다고?? 말이 돼??
아주 잠시 '살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실상황을 보고 '아니다' 싶었다.아무리 기계가 똑똑해봤자 1X1 사이즈 레고조각이 치워야 할 쓰레기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청소기만큼 다이내믹하게 성장한 가전이 있을까. 외관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는 녀석이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길 때마다 코드를 뺐다 꼈다 해야 했던 추억의 유선청소기부터 일체형 무선청소기, 로봇청소기, 물걸레청소기에 침구청소기까지. 종류도 모양도 역사도 다양하다. 한 때 주부들 사이에서 혁명과 같았던 '일렉트로룩스'의 추억도 떠오른다.그렇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혁명적인 청소기였다.
충전된 무선청소기를 꼿꼿하게 서서 밀고 다니는 광고 속 외국인 여성이 그렇게 세련되어 보일 수가 없었다. 흡입구와 모터 부분이 일자로 길쭉하게 배치된 외형이 간결해 보였고, 무엇보다 늘 보던 삼성, 엘지가 아닌 일렉트로룩스라는 브랜드가 글로벌해 보이는 것이 뽄새가 좀 났다. 남편을 조르고 졸라 그 녀석을 '겟'했다.
그러고선 알았다. 청소기는 청소가 제법 필요한 놈이라는 것을.
흡입구에 머리카락이 자꾸 엉켰다. 쪽가위로 엉킨부분을 듬성듬성 잘라주고 손으로 일일이 끄집어내야 했다. 유선청소기에 비해 먼지통이 작으니 먼지통 청소도, 필터교환도 더 자주 해야 했다. 모터가 비교적 몸 쪽에 가까워서인지 윙 하는 소리도 더 시끄럽게 들렸다. 무엇보다 점점 짧아지는 사용시간이 가장 문제였는데, 2년쯤 사용하니 충전용 배터리 수명이 다 되어서 5분 돌리고 다시 충전하고를 반복해야 했다. 광고 속 우아함을 구현하기 위해 물밑작업에 품이 많이 들었다. 7만 원인가 주고 배터리를 교환한 후 녀석에 대한 애정은 더욱 가파르게 식어갔다.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은 로봇청소기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마침 그 맘 때 '샤오미' 열풍이 불었다. 대륙의 실수, 샤오미 또한 혁명적이었다. 메이저 브랜드의 로봇청소기가 백만 원을 호가하는지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샤오미는 1/3도 안 되는 가격에 번듯한 백색 로봇청소기를 (게다가 물걸레질도 가능) 들일 수 있었다.
아이가 어릴 땐 괜찮았다.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입에 넣는 아기가 있으니 조그마한 물건은 어차피 다 치워놓은 상태였다. 그땐 레고도 '듀플로'라 로봇청소기가 집어먹을 일이 없었다. 바닥에 널린 큼직한 것들을 몇 개 치우고 외출 전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나가면, 집에 돌아왔을 때 마치 이모님이 다녀가신 것처럼 방바닥이 깔끔한 게 좋았다.
그러나 아들은 계속 자랐다. 듀플로는 일반적인 사이즈의 레고로 바뀌었고, 포켓몬카드와 띠부띠부씰까지 합세해 로봇청소기 한 번 돌리려면 방바닥 대점검을 해야 했다. 거기에 앞서 언급했던 무선청소기급 관리는 기본옵션이었다.
결국 밀대걸레를 구입했다. 평상시에 그때그때 눈에 띄는머리카락이나 먼지를 밀고 다니고, 가끔 로봇청소기를 돌려 대청소를 했다. 사용해 보니 관리가 가장 쉬운 것은 밀대걸레였다. 세련되어 보이는 외국브랜드도 아니고, 알아서 청소를 해준다던 로봇도 아닌 그냥 막대기 하나가 최고였다. 청소포만 갈아 끼우면 되기 때문에 뒤처리 할 것도 없고, 소음이 없어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슥슥 밀고 다닐 수 있다. 유지관리 비용도 가장 저렴하다. 물걸레청소포도 있어서 이걸 끼우면 걸레질한 효과도 낼 수 있다. 시댁에 왜 진공청소기가 없고 밀대걸레만 2개 있는지 이해가되었다.
치열한 청소기 시장에 빠져 허우적거린 지 13년. 각종 청소기를 거쳐 남은 건 밀대걸레 하나뿐이다. 전자제품을 들인다는 건 곧 청소하고 관리할 것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이란 걸 이제는 안다.
밀대걸레의 고민이 딱 하나 있는데,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청소포 한 장을 끼운 뒤 이틀을 사용하고, 뒤집어서 반대쪽을 또 사용해도 어쨌든 청소포 쓰레기가 계속 나오는 건 환경에 득이 될리 없다. 그래서 나는 요즘... 밀대걸레도 관두고 걸레 한 장으로 청소해 볼까 고민 중이다.
직접 손을 움직이고 다리를 움직여 행동한 모든 것은 자신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옵니다. 자신의 몸을 사용하면 다양한 것들을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 마스노 슌묘《걸레 한 장으로 삶을 닦는 스님의 청소법 》중 p215
미니멀라이프에 한참 빠져있을 때 읽었던 책이 생각난다. 수명을 다 한 수건을 걸레로 탈바꿈해 그거 한 장으로 온 집안을 쓸고 닦는 모습을 상상하니 이거야말로 유지관리의 끝판왕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 봐라. 청소기 지가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손걸레질 못 따라가는 건 자명하다. 다만 쭈그려 앉은 내 무릎이 시큰거리겠지.
오늘은 큰맘 먹고 낡은 수건 한 장으로 방바닥을 닦아봐야겠다. 온 집안을 다 치우면 진 빠져서 걸레를 내던질지도 모르니 우선 가장 작은 방 딱 하나부터 도전해 보련다. 청소기는 못하는 손걸레질 특유의 뽀득함, 우리 엄마가 방청소해 준 것 같은 청결함을 발바닥으로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