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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름 Jun 18. 2024

양배추 잎을 한 장 한 장 떼어서 씻어보아도

이걸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순대볶음을 하려고 1/4컷 양배추를 사 왔다. 포장비닐을 벗기고 수박 썰듯 숭덩숭덩 썬 뒤 한 입 크기로 잘라주었다. 쌀 씻는 채반에 받치고 흐르는 물에 씻어주며 겹쳐진 잎을 찾아 전부 분리시켰다. 찝찝했다. 열심히 씻고 있는데 마음 한 켠이 묵직하다. 예전에 본 김소형 한의사의 유튜브가 떠올라서이다. "양배추~ 절대 물에 씻지 마세요! 영양소 다 씻겨나가요."라는 그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양배추 잎을 물에 씻느냐 마느냐는 늘 마음속 논쟁거리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런 나를 귀신같이 알고 있기 때문에 안 씻어도 괜찮다는 내용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내용을 번갈아 띄워준다. 사, 영양사, 식품연구가, 심지어 딸들에게 요리를 알려주는 컨셉의 유튜버 '어머니'들도 양배추 세척에 대한 의견이 다 다르다. 이쯤 되면 내가 직접 논문 찾아 메타분석 해야 하나 싶을 정도이다.


물로 씻어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의 근거는 수용성 비타민이 물에 다 씻겨 나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먹는 부분은 양배추의 잎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결구라 불린다. 결구가 생기기 전 120여 일 동안 열심히 농약도 치고 기르다가 결구가 생기기 시작하는 때부터는 농약을 안 친다. 구는 탄생 후 농약에 닿아본 적도 없는 것이다.


반면 물로 씻어야 하고 심지어 식초물에 담그라고 하는 의견 또한 농약이 주된 논점이다. 잔류농약을 제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지 도통 확신이 서지 않는다. 결국 그래서 오늘도 민만 하다가 평소 하던대로 양배추를 -끄시 쳤다.


양배추를 씻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배추 잎을 한 장 한 장 떼어서 씻어보아도 그 잎은 항상 하얗고 깨끗하다. 그 사이에서 벌레는커녕 흙 한 톨을 발견한 적이 없다. 슷한 맥락으로 무농약 무순이나 어린잎 채소도 마찬가지이다. 한점 먼지 없이 깨끗해 보이는데?? 게다가 그것들은 물기 빼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나는 그닥 근거 없는 신념으로 그래도 씻는 게 낫겠지 하며 세척의 끈을 놓지 못한다. 그러면서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고 이도저도 아니다.


전에는 버섯도 물에 씻어서 먹었다. 물먹은 버섯을 요리하면 식감이 살지 않고 축축 쳐져서 할 수 없이 먼지만 털어내고 요리하기 시작했다. 배탈도 안 났고 별일 없었다. 그 후로 과감하게! 버섯만은 물세척을 건너뛴다.


어떤 행동을 결정할 때는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근거가 있다. 나는 양배추를 씻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더 근거가 타당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 생각을 온전히 믿고 행동으로 나오기까지 몸 안에서 숙성을 거치며 그 기간동안 더 많은 근거들을 찾아 적립한다. 그러곤 한참이 지나야 새로운 행위로 도출된다. 글을 써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실제로 쓰는 행위까지는 2년이 넘게 걸 것도 이런 이유이다.


언젠가 큰맘 먹고 양배추 세척도 건너뛸 수 있을까. 어떤 계기가 있어야 그 큰 허들을 넘어가 볼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양배추 세척이 이렇게 몇 년동안이나 고민할 일인가 하하하. 과연 그런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을 하며 순대볶음의 양배추 조각을 집어 먹는다.





*글쓰기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초보입니다. 라이킷과 구독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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