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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계획에는 없었지만

by 인디라이터 호

인생에 계획대로 되는 일이 과연 몇 프로나 될까? 나는원래 무척이나 계획형 인간에 가까웠다. 뭐 계획을 한다고 해서 모두 실천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계획형 인간이라 말하기도 부끄러울 때가 있지만, 부모님을 보며 고단한 삶의 파고를 어렸을 적부터 느꼈기에 내 인생은 실수 없이 살아 보겠다는 오만 방자함이 나를 조금 더 계획형 인간에 가깝게 만든 것 같다.


계획형 인간들이 흔히 하는 어떠한 일에 대한 구상, 그리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세부적인 계획, 거기서 더 나아가 해야할 일에 대한 목록 작성과 매일 밤 수정 점검을 거치며 계획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일, 모든 자기 계발서가 예찬하듯 이는 아름다운 일임에 틀림 없다.


대구로 다시 내려와 사는 것은 내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결혼 전부터 아니 서울에 도착해서 내 시간을 일궈가던 그 순간부터 고향으로 다시 내려오는 일은 포함되지 않았다. 우선은 살았던 도시에 대한 미련이 조금도 없었고 미련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싫증에 가까우리만치 남겨진 것에 대한 호기심과 애착이 없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결코 다시 대구에 내려 와 살지 않을 것이라 말하곤 했다. 출강을 서울 각지로 다니며 곳곳의 아파트가격을 검색하기도 했고, 내 삶의 단계를 어느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꾸릴 것인지 막연히 꿈꾸며 허락된 삶의 테두리 속에서 나름 부지런하게 살아 왔다고 자부했다. 숟가락 스윙을 받아내며 이루어낸 독립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조금은 증명해 주었고, 어딘가 부어도 부어도 자꾸 밑이 빠지는 장독 같은 서울 생활이었지만 더많은 기회와 꿈이 허락된 나의 싱글 시절은 완벽하지 못했어도 푸릇푸릇 했기에 풍요롭지 않았어도 불안감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신의 마스터 플랜 대로 된다고 했던가?


결혼 후 나의 생활과 일은 변함이 없었지만 건설 사업을 하던 남편의 일은 하루가 달리 위태로워졌다. 강한 의지를 갖고 사력을 다하는 남편에게 운이 따라주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버는 돈의 일부가 생활비로 들어가기 일쑤였고 서른 세평 전세로 시작했던 우리의 살림 살이는 2년이 지나 더 쪼그라들어 2년 후에는 전월세 빌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서두르면 닿을 수 있을 것도 같았던 서울에서의 내 집 마련에 대한 꿈은 점점 멀어졌고 밤낮도 없이 애쓰던 남편의 사업은 급기야 운영이 존폐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시작한 결혼 생활이 내 기대와 계획에서 자꾸 어긋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내 마음조차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내색하지 못하고 버텨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전히 신뢰하는 성실한 그리고내가 사랑하는 남편과 이른 저녁을 먹고 석촌 호수길을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번도 빌라에 살아본 적이 없는 남편은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에서 풍기는 하수구 냄새를 몹시 싫어했다. 그래도 함께 걷는 길, 봄내음은 아름다웠고 손 잡고 둘이 걷는 봄밤도 좋았다. 두 손을 맞잡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말을 꺼냈다.


“대구에 내려 가서 사는건 어떨까? 한 회사에서 괜찮은 포지션으로 오퍼가 왔는데…”


대답하는 데 2초도 걸리지 않았다.


“좋아!”


대답을 하고서 내가 더 놀랐다. 우선 내 계획에 없었고 상황이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간다는 것은 한번도 생각하지 않은 길이었는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입에서 ‘좋아’라는 두 마디가 튀어 나와 버렸다. 희망이 없는 생활에 어지간히 지친 탓이어서 일게다. 그렇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편은 대구로 내려가 면접을 보았고 대구에 계신 시어머님 댁에서 출근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6개월을 더 서울에 남아 계약된 일을 마무리하고 전월세 빌라의 만기가 다 차지도 않은 가을, 우리는 대구로 완전히 내려 왔다.


동대구역으로 마중 나온 남편의 차를 타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근 한 달 만에 본 남편이 너무 애틋해서도 아니요 다시 고향에 내려온 게 너무 기뻐서도 아닌, 그냥 대구로 다시 내려 와 살게 된 일이 내 계획에는 전혀 없던 일이어서 유치하게도 마음이 실망한 티를 내고야 말았다. 참 어리고 보잘것 없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얼마간을더 어머님 댁에서 머물며 우리의 집구하기는 시작되었다. 서울 빌라의 보증금은 2억이 채 안되었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결코 넉넉한 금액도 아니었다. 적당한 곳에 전세를 얻으려고 부지런히 부동산을 뒤졌다. 어머님 댁 근처 수성구 아파트를 알아 보았는데 생각보다 비싸지가 않았다. 서울 집값에 비하면 반 값도 하지 않았으니살짝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전세금에 조금만 더 보태면 집을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역시 막다른 골목은 없다’


남편과 긴 상의 끝에 집을 사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장만한 우리의 첫 집이 바로 대구 내 주요 학군 부지에 위치한 서른 평 아파트다. 지금을 세를 주어 다른 사람이 살고 있지만 , 우리 첫 집 소유권은 마치 눈물을 흘리며 꾸역꾸역 내려온 나를 위한 신의 위로처럼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남편은 멸사봉공의 자세로 회사와 출장을 다니며 가정을 세우기 위해 수고해주었고, 연간 2만 킬로미터의 거리를 달리는 우리의 분주한 생활은 계속되었다. 마침내 대구에 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든 기억을 고스란히 접어 마치 존재하지 않던 과거 마냥 묻어 두었던 삶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인사를 해주었다.


장을 보러 가는 길에 만난 동창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연락처를 주었고 크리스마스를 맞아 부모님과 함께 보러 간 뮤지컬 공연장에서는 옛 동료가 풀쩍풀쩍 뛰며 안부를 묻고 다시 만난 기쁨을 표시해 주었다. 밑 빠진 독처럼 남는 것이 없었던 고단한 서울 생활과 달리 상대적으로 조금 낮은 물가는 마음에 안도감과 조금 더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삶이었지만 이제는 주변을 돌아보고 가도 괜찮다고 이야기 해 주는 것 같았다. 오랜 친구들과 가족들과의 재회는 심리적 안정감과 묘한 책임감을 동시에 주었는데 계획에 없던 그 모든 것들이 나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고향으로 다시 돌아 온 지 6개월이 지난 어느날 내 부케를 받았던 이영애보다 아름다운 민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뭐해?”

“지금 준비해서 나갈려구, 약속 있어.”

“잠깐만, 잠깐만, 언니 청약 통장 있어?”

“있지, 왜?”

“오늘 월배 아이파크 청약일이야. 한번 넣어봐.”

“나 지금 나가야 되는데, 내일 하면 안될까?”

“안돼 안돼, 오늘까지야.”

“나 청약하는 방법 모르는데…”

“지금 아파트 투유에 들어가서공인 인증서로 접속하고 아이파크 눌러서 청약하면 돼. 빨리 해.”

“나 집 산지도 얼마 안됐는데…”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야, 얼른 해봐.”

“그래, 알았어. 고마워. 되면한 턱 쏠께.”

“기대할께!”


처음 해보는 일이라 절차가 조금 귀찮기도 했지만 외출 시간을 조금 늦추고 부랴부랴 내 생에 첫청약을 넣었던 기억이 난다. ‘설마 되겠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잊고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민아에게서 전화가 왔다.민아도 나도 모두 로얄층 42형 아파트에 당첨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내게도 일어나다니!’


할 수 있는 모든 감탄사와 기쁨의 찬사가 흥분된 입술에서 마구 쏟아져 나왔다. 로또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잊지 못할 내생애 운이 좋았던 순간 중 하나였다. 지금은 그 집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살 길이 조금은 막막해 보였던 나와 남편의 인생에도 그렇게 따스한 볕이 찾아 들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계획하지 않은 곳에서 내 삶을 이끌어 간 보이지 않는 힘은 무엇일까’ 하고…


그리고 그 후에도 엎치락 뒤치락 가끔은 계획대로 이루어지기도, 또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계획과 예상을 빗겨가며 나에게 많은 좌절감과 분노 어린 상실감을 주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생의 연수가 늘어가며 나는 점점 더 계획과 시간 사이의 균형에 머리를 끄덕이게 되었다. 계획이모두 성취되는 것은 큰 기쁨이지만, 피조물로써 온 우주의 시간에 가끔은 내 몸을 맡긴다.


‘혹시 또 모르지 않는가? 기대만 갖고 다 내려 놓은 일에서 또 다시 보물을 발견하게 될 지.’


어긋난 계획에도 빛은 있다. 그래서 가끔 삶이 내생각에서 이탈하여도 거기가 끝이 아닐 것을 알기에 이제는 내 마음이 상실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끔 행운은 불행이라는 가면을 쓰고 내 앞에 나타나 마침내 그 어두운 얼굴을 뒤로 하고 감춘 것을 드러내며 웃어 보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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