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향해서라면 과거는필요 없지! 힘들은 나의 인생도 내일을 향해서라면!’
차창 밖으로 익숙한 풍경들이 지나간다. 소리와 소음에 예민한 나는 가사가 있는 음악을 몹시 피곤하게 여긴다. 누군가 쉴 새 없이 얘기하는 느낌이 들어서 쉬이 피로감을 느껴 웬만해서는 듣는 일이 없다. 지금도 (유식한정보는 전혀 갖고 있지 않지만) 내 마음의 박동과 정서에 맞는 음악을 고르라면 단연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나 에디 히긴스의 재즈나 혹은 보사노바, 그리고 운전할 때는 주로 채널은KBS 2 FM 클래식 채널을 켜놓는다. 취향이라는 건 늘 마음 먹고 정하는 것은 아니어서 어느 순간 그런 음악 취향이 생겼는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는 가사가 있는 노래, 특히나 열과 성을 다해서 부르는 가창력 위주의 곡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가수에 대한 취향은 이와는 별개인데, 고등 학교때부터 그리고 나의 여성으로써의 정서가 아름답게 형성되기 시작할 20대 무렵, 내가 좋아했던 가수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레깅스를 입고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외모의 가수 신성우와 당시로서도어딘가 힙함이 온 몸에 베어있던 가수 이현우였다. 이런 나의 취향을 친한 친구들은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가끔 비웃곤 했지만, 아마 고등 학교 때도 미술 선생님을 깊이 흠모한 걸로 보아 나는 멋스러움이 여기저기 묻어져 나오는 미대 오빠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결혼 후 여러 기업에 출강을 다니며 삼성, 엘지, 신세계와 같은 대기업 그리고 크고 작은 중소 기업들을 출입하며 나의 프리랜서 생활은 이어졌다. 감히 대기업에 들어갈 스펙은 되지 않았지만, 그 곳에서 근무하는 학생들을 이른 아침이나 점심 시간에 만나며 그들에게 영어를 트레이닝을 시키고 가끔 사담을 나누는 일은 나의 또 다른 사회 생활 같아서 나는 그시간들을 무척 사랑했다. 그 중에 한 곳이 YG 엔터테인먼트였는데, 유명 건축가가 지었을 법한 세련된 건물 외관과 그 입구에 늘어선 당시로써는 흔하지 않았던 최고급 외제차들, 그리고 사옥 입구를 열고 들어가면 바닥부터 천장까지 전면에서 번쩍이던 대형 뮤직 비디오는 뭐랄까 아무리 세련되어도 지나침이 없어 그곳에서 수업을 하는 동안 늘 옷차림에 엄청 신경을 썼던 기억이 있다. 거기서는 두 개의클래스를 진행했는데, 아티스트들의 해외 공연이 한창 늘어나던 터라 매니저들과 함께 기초 회화 수업과또 한 클래스는 일정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사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중고급 단계의 프리 토킹 수업이었다. 여느회사와 마찬가지로 그곳에도 각자의 부서에서 단단한 톱니가 되어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책임감 있는 직원들이 있었고, 또 달리 신기했던 점은 음악 기업 답게 다양한 부서에서 매우 창의적인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 중 아티스트들의 앨범 디자인과 패키지를 제작하던 디자인 부서는 나와 거의 나이가 같았던 큰 눈망울의 톡톡 튀는 디자인 실장님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는데, 주로 수업이 이루어지던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는 그 기분을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화이트와 그레이 톤의 세련된 내부 공간이 인상적이던 그녀의 사무실 벽면은그녀가 작업한 아티스트의 앨범들로 빼곡했는데, 음악적 내용물을 다 알지 못함에도 패키지 자체만으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감각과 위트가 넘치는 또 다른 레벨의 창작물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매주 심미안이 돋보이는 건물의 외관을 지나 그녀의 사무실을 들리는 건 그 당시 내게 작은 기쁨이었다.
주로 언어 전공자인 내 주변인들과 신박한 논리와 화술적 다양함을 가지고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았지만, 음악을 만들어내고 또 그 음악에 맞는 이미지를 상품으로 구현하는 그녀와의 작업과 이야기도 늘 새로웠다. 차이점이 있다면, 늘 기승전결 논리 속에 또 다른 논리를 만들어내는 우리의 구조적인 대화와는 달리 그녀의 이야기는 승전기결 혹은 기결승전과 같이 맥락을 따라 잡기가 무척 힘들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머리 속에서 팝업처럼 튀어 오르는 영감을 기반으로 한 그녀만의 대화법이 아닐까 싶다.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건 그녀의 사무실 만이 아니었는데, 그이유는 그녀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옷을 멋지게 입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유행을 따르거나 소재와 디자인의 조합으로 맞춰 입는 지루한 착장이 아니라 그녀의 옷차림은 그녀가 만들어내는 작업물처럼 보였다. 보라색으로 끝을 염색한 그녀의 찰랑거리는 머리가 그녀가 시도하는 여러 가지 독특한 아이템들을 더 엣지있고 세련되게 보이도록 해주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막연히(아니 지금은 보다 확실해졌지만) 미술적 영감을 사랑하는 지도 모르겠다. 지루한 삶의 쳇바퀴 속에서 내 머리를 흔들어 깨울 영감을 갈망하는 지도 모르겠다. 삶은 그저 줄 그어 놓은 한계 속에서 발버둥 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나의 꽉 막힌 사고가 그러한 자극들로 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떤 사람을 동경했다.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져서 그리고 가진 것이 너무 자유로워 마치 내 삶의 막혀 있던 한 부분을 툭 하고 건들며 문을 열어준 것 같았다. 이후로 나는 디자인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시각적 사치와 만족을 추구하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눈을 떠 길러진 감각은 이제 내 삶에서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성능이 같은데디자인이 독창적이면 그것은 희소성 있는 명품이 된다. 그리고 그 명품은 삶 속에 오래 남아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해내며 깊은 만족을 준다.
오늘따라 벽 면을 채운 그림과 발레리나가 그려진 울퉁불퉁 투박한 커피잔이 감사하다. 코로나가 길어지는 이 시간에 내 눈과 입술의 위로가 되어 주어 감사하다.
내 삶을 음미할 수 있도록 심미적 아름다움이라는 새 지평을 열어 준 그녀에게 무한한 감사를...
가끔 비슷한 공장에서 만들었을 진열된 구두를 뒤로 하고 가끔은 파격과 위트가 숨어 있는디자이너 슈즈를 살 수 있도록 해준 그 방에서의 모든 시간을 예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