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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또집 Sep 25. 2024

그만해- 힘들자나-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한참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져나갈 때가 있었다.



그리고 나도

해가 쨍했던 어느 여름날

내 아들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아이는 이제 제법 자라서

유모차를 졸업하고

트라이크 자전거에 빠져있다.



자전거 고르기는 처음이라,

어떤 모델을 고르는 것이 좋을지 몰라

발 받침대가 없는 트라이크를 골랐더니

자전거를 탈 때 페달에 발이 자꾸만 채인다.

(아직은 페달에 발이 닿지 않아 밀어줘야 한다.)



본인도 불편했는지


하루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다리를 뒤로 쭉 뻗더니

"로켓!!!!"이라고 외쳤다.



자전거를 밀어주던 아빠는

아이의 외침에

부웅- 속도를 높임으로 응한다.



아이들은 재밌는 걸 한 번 발견하면

질릴 때까지 몇 번이고 그걸 반복한다.



제법 맘에 드는 놀이었는지

아빠에게 몇 번이고 해달라고 하더니만



아빠가 없는

엄마와의 외출 때도 자세를 갖추고 외친다.

"엄마 로켓!!!!!"



엄마 몸에는 세상에 난 지

아직 채 반년도 되지 않은 동생이

아기띠에 담겨 매달려 있다.



그렇지만 첫째의 기대에도 불응할 순 없지.



둘째를 가능한 꽉 붙잡고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종종걸음을 하며 속도를 높여본다.



그리고 아이는 이내 말한다.

"엄마 로켓 그마내- 풀이 힘들자나-"



이럴 수가.

아이의 기대에 응하려 땀을 뻘뻘 흘리던 엄마는

순식간에 아이를 힘들게 하는 나쁜 엄마가 됐다.



푸하!

웃음이 터진다.



"니가 밀어달라며!"



"엄마 그마내- 힘드러-"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눈을 흘긴다.



해가 쨍한 여름날

햇살이 꽤나 견디기가 힘이 들었나 보다.

다리까지 한껏 위로 들고 있기엔 날이 너무 덥긴 하다.



이 귀여운 가스라이팅을 못 본 척,

그저 웃어서 넘긴다.



날도 더운데 다리나 들고 있게 한 엄마가 잘못했지 뭐!



아이도

바로 보기도 힘든 강한 햇빛 대신

엄마가 눈 두기 좋은 화풀이 대상이었던 걸 안다.



갑자기 호다닥 날씨로 말을 돌린다.

"엄마야 햇님이 쨍- 해떠"



"악! 가려!"

건물에 가렸던 해가 건물 사이에서 다시 드러나니

눈을 가리고 그것도 모자랐는지

몸을 부들거리면서까지 눈을 꽉 감는 모습이 귀엽다.



그늘에 들어가면 바람은 제법 시원하게 불어온다.

"바람이 부니까! 엄청 시원하다- 엄마도 시워내-?"



그 시원한 찰나를 놓치지 않고

조잘조잘 말을 걸어온다.



햇님이 쨍하고 비춘다는 것도

바람이 살랑 불면 느껴지는 것이 시원함이라는 것도

언제 이렇게 배워서 조잘거리게 됐을까.



"엄마 지금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릴까-?"

"지금 매미 소리지?"

"매미가 울었어? 어떻게 울었어?"

"맴-맴- 우러써!"

"풀이는 어떻게 울어?"

"풀이는 잉잉! 울어찌?"

"응 풀이는 어제 잉잉 울었지?"

"웅! 잉잉- 울어떠. 지금은(오늘은) 안 울꼬야."



"헤?! 풀이 깜딱 놀랐네?!"

"엄마 지금 무슨 소리여찌?"

"오토바이가 붕- 지나가서 풀이 놀랐어?"

"웅 오토바이 때무네 풀이 깜딱 놀라떠- 후-"

"엄마 조시매-? 오토바이 이쓰니까 조시매-?"



길을 가며 들려오는 매미 소리도

옆에 지나가는 오토바이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참견을 한다.



덕분에

서른이 넘어가며

이제는 더 이상 길을 걸으며 보이는 것들이 새롭지 않은 엄마도

놓치고 살았던 여름날에 들어있는 작은 순간들을 눈에 담는다.



그래서일까,

올해 여름은 마치



바람이 솔솔 통하는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대나무 돗자리 위에서 뒹굴거리며 여름 방학을 보내던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간만이다.

이런 청량한 여름날.





아이들과 함께 하니

그저 지나왔고 앞으로도 지나갈 무수한 날들 중

햇빛 피하기 바빴던 짜증 가득한 여름날이

유독 반짝반짝 빛난다.



이렇게 햇빛이 내리쬐던 날,

땀 흘리며 자전거를 타던

그리고 엄마에게 화풀이하다가도 조잘대던 순간이

네가 여름을 추억하는 날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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