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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또집 Sep 23. 2024

"아빠 불쌍해."

사실 고마운 건데

가끔 내 아이는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다

간단하지만 놀라운 말들을 뱉어낸다.



하루는 말했다.

"아빠가! 불땅해."



보통 아이의 말을 들으며 드는 놀라움은

'이런 표현을?'

라는 생각이 대부분이지만



이번만은 조금 다른 결의 놀라움.

염려가 섞여 퍼진다.



"아빠가.. 불쌍해?"



"웅 아빠 불땅해-"

역시나 간단명료.

대답엔 사족이 없이 질문에만 충실하다.



아쉬운 사람은 놀라버린 엄마.


그 말의 뜻을 알고 싶은 이가

질문을 이어간다.



"아빠가 왜 불쌍해?"

"아빠가! 밖에 이써. 불땅해-"



[불쌍-하다]

동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슬픔을 느낄 만큼 처지가 어렵거나 불행하다.



아이가 이 단어의 뜻을 알고 쓰는 말일까?

믿기지 않아 재차 물어본다.



"아빠가, 불쌍해?"



"웅- 아빠가- 불땅해-"

"나는 아빠를 못 봐서 똑땅해-"

"아빠가- 자꾸만 일하로 가지?"

"엄마야, 아빠가 왜 맨날 맨날 느께 오지?"



입술을 삐죽 내밀고

통통한 볼살을 늘어트리고

고개를 떨구고

미간을 구겨낸다.



작은 얼굴 속

오밀조밀 들어 찬 이목구비를 사용해

한껏 속상함을 표한다.



서운하다는 말과

불쌍하다는 말을

구분해서 쓰고 있는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찌 됐든 간에

아빠가 일을 하러 가서 잘 때까지 오지 않으니

속상한 마음에 튀어나온 말임은 확실하다.

(언제는 "아빠가 없어서 마음이 안 조아-"라고도 했다.)




아이는 아빠를 참 좋아한다.

규칙이 구석구석 묻어있어

여기저기서 "안돼"라는 말을 뱉어대는 엄마와는 달리



아빠는 예스맨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엄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아빠.

아빠는 그 작은 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좋은 아빠다.



해서 아빠는 예스맨이다.

장난기 서린 철부지 아이 같은 얼굴로

킥킥대며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그런 아빠를 향한 그리움이

저녁에 엄마의 화가 짙어질수록 또렷해지나 보다.

저녁이 되면 아빠를 찾곤 한다.



아이가 아빠를 찾기 시작하면


왜 아빠가 자신의 옆에 붙어 있지 않고

일을 하러 가야 하는지

설명해 내기가 퍽 어렵다.



까까, 뽀로로, 물놀이 ..

아이가 좋아하는 단어는 다 꺼내본다.

아빠가 함께 할 수 없는 시간과 바꿀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늘어놓았다.



아이의 고개는 여전히 갸웃.

돌아오지 않는다.



피식, 웃음이 난다.

나는 아직도 사랑을 잘 모르겠는데

이 아이에게 어찌 아빠의 사랑을 설명해 주겠나.



방향을 바꿨다.



"아빠는, 우리를 지켜주러 나간 거야."

"지켜두러?"



"응- 아빠가 밖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어."

"아빠가 집에 오면 우리 고마워요- 하고 말해볼까?"



"웅! 고마워요- 하꼬야."



여전히 아빠가 없는 것이 이해는 안 되는 듯 하지만

다시금 눈을 반짝이는 걸 보니

아빠가 우리 집을 지켜준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워내면서



남편과 나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해야 할 사랑에 충실하며 살아간다.



남편은 각자의 자리를 당연히 여기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 감사하며

그 감사를 표하며 산다.



그런 남편이 있음에

내 아이의 아빠가 그런 사람인 것에

내 마음에도 감사가 고개를 든다.



남편이 일하러 갈 때 아이와 함께 인사해보려 한다.

"아빠- 고마워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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