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안 좋아
아이와 하루 중 가장 사이가 좋은 시간을 꼽아보자면
나열되는 순간들은 모두 잠으로 연결되어 있다.
첫째로는 밤새 푹 잔 뒤 일어나
"엄마, 잘 자떠-?"
하고 얼굴을 슬며시 만져주는 시간
아직 어둑한 창 밖 하늘에 엄마가
"풀아, 더 자."
하면 시무룩해서 침대로 돌아가지만
"응 잘 잤어- 풀이도 잘 잤어?" 하면
놀 시간이 시작됐다는 신호에 아이 얼굴은 가을하늘보다 환해지고
그 환한 얼굴을 엄마 얼굴에 부비기 바쁘다.
둘째로는
잠에 들기 전 서로의 살을 만지작대며
잠든 동생을 깨우지 않기 위해 소곤대는 시간
아이를 먼저 씻기고 "누워있어-" 하면
동생이 씻는 동안
방문까지 기웃거리긴 하지만
방 문 턱을 넘진 않고 얌전히 침실에서 기다린다.
뽀송하게 다 씻은 동생과 침실에 들어서면
"엄마 와떠-?" 입이 쭉 벌어지게 웃으며 말한다.
동생이 자기 전 마지막 식사를 하는 동안
침대에서 뒹굴뒹굴,
둥글게 둥글게 돌면서
동생의 하루 마지막 시간을 다시 한번 기다려주는 기특한 형아다.
동생이 침대에 누우면
드디어 내 첫 번째 아이가
엄마를 독차지한다.
아이 옆에 누우면 곧장 말한다.
"엄마 조아-"
얼굴을 다시 만지작만지작
아직은 세상에
만져본 것보단 만져보지 못한 것이 더 많은
보드라운 손으로
열심히 엄마를 만져댄다.
오늘 하루는 뭐가 예뻤는지 묻고
엄마가 즉석 해서 지어주는 옛날 얘기도 듣고
100번은 읽은 듯 한 아이가 좋아하는 책도 읽고
자기 전 하루 마무리를
열심히도 한다.
하지만 살을 맞대는 걸 좋아하는 것과 반대되게도
옆에 사람이 있으면 잘 자지 못하는 아이다.
"엄마 좁자나-"
"엄마 인형 풀이 꼬야."
아이가 빨리 잠에 들려면
그리고 푹 자려면
아이의 눈에 잠이 가득 들어찰 즈음
아이와 안녕을 말하는 것이 낫다.
"풀아, 엄마도 씻고 올 테니까 자고 있어?"
확률은 반반
반은 씩- 웃으며 엄마에게 손을 흔들어 주지만
반은 엄마에게 손을 내민다.
"엄마 가디마."
"엄마가 바께 나가므는 나는 엄마가 업써"
"풀이는 맘이 안 조아."
피식.
말을 왜 이리 잘하는지!
때로는 나를 화산 같이
주체할 수 없게 만드는 아이지만
그 조그만 입술에서
오물조물 나오는 말들을 듣고 있자면
한껏 오르락내리락하는 눈썹도
꼼지락대는 발갛고 통통한 입술도
문장 구조에 하나하나 단어를 넣어보려는 듯 불룩이는 보드라운 볼살도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어떡하겠는가.
좀 더 늦게 자고 말지 뭐.
오늘 못 잔 잠에 취해
지금 예쁘기만 한 저 입술에 내일은 짜증을 묻힐 게 분명하지만
못 이기는 척 다시 아이의 옆에 눕는다.
내일은 내일의 나에게.
그리고 내일의 아이에게.
내일은 또 다른 사랑스러움으로 나를 놀라게 할 테니,
괜찮다. 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