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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또집 Sep 18. 2024

아니? 엄마 기여어.

내겐 어렵고 너에겐 쉬운 그것

많은 엄마들이 그러하듯

나는 무서운 엄마다.



둘째가 생긴 후 더더욱 그렇게 됐다.

작은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급한 마음에 다그침은 큰 아이를 향한다.

(큰 아이 27개월, 작은 아이 5개월)



아이를 재촉하는 다그침은

대부분은 다그침이 필요 없는 일에 사용된다.



아직은 세상을 배워야 할 나이.

호기심에 이리저리 기웃거리느라 한 세월

아직은 손이 미숙하여 한 세월



시간이 필요한 게 당연한 어린 내 아이지만

나 또한 아직은 엄마가 된 지 얼마 안 된

어린 엄마.



아이를 향한 초침은 세상의 시간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덜 익은 내 미숙함으로

같은 속도를 요구하고 만다.



아이는 뻘뻘 대며 모두가 똑같이 지키는 초침을

발 빠르게 따라오다

결국은 지쳐 닭똥 같은 울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울음을 담아낼 공간이 없는 나쁜 엄마는

그 눈물이 마음에서 넘쳐 흘러

화로 터져 나온다.



한바탕 호통과 울음을 주고받으며

잘 준비를 마치고

함께 잠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잠자리에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쓰지 말아야 할 곳에 쓰인 다그침이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되어 눈에 들어온다.



마음에 밤송이가 하나 굴러다니는 것만 같다.



하루는 아이에게 한참을

내 작은 그릇에서 넘쳐흐른 잘못들을 주절주절 읊어낸 뒤 물었다.

"풀(가명)아, 엄마 무서워?"



아이가 답했다.

"아니? 엄마 기여어."



귀엽다니!

예상도 못했던 말에

순간 부끄러움으로 숨이 턱 막힌다.



아이를 향했던 내 날 선 표정과 말은

둥근 사랑이 되어 돌아왔다.



모난 부분이 깎여 둥글게 내게 돌아오는 시간은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이는 내 얼굴을 소중히 쓰다듬고

내 뺨에 자신의 뺨을 부비며 덧붙인다.

"아- 죠아-"



"엄마가 풀이한테 화냈는데 속상하지 않아?"

"똑땅해떠- 히-"



속상하다는 말과는 상반되게

세상 맑게 웃는 아이의 해 같은 얼굴은

다시 한번 나를 부끄럽게 한다.



아이가 나에게 보내는 사랑은

뒤끝도 조건도 없다.



잔뜩 뿔이 나서 째려보다가도

돌연 다가와 엄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나는- 엄마가 죠아."라고 말하는 일도 다반사.



나에겐 어렵고 너에겐 쉬운 그것.

그것은 용서고 사랑이다.



자식은 절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만큼 부모를 사랑할 순 없다고 하지만



그건 자식이 어려서 보여준 무섭도록 무조건적인 사랑을

부모가 보고 배워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언제나 배움이 느린 아이였다.

처음 하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다른 이들보다 항상 느리고 미숙하고 서툴렀다.



그렇지만 조금만 배우면

꽤나 능숙하게 일을 해냈다.



해서 나는 언제나 시간이 필요했다.



그건 지금도 같다.

어른이 된 지금, 여전히 나는 배움에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그런 나는

이토록 용서도 사랑도 척척 해내는 멋진 아이에게

왜 조금의 시간을 주지 못한 채

그 찰나를 참지 못하고 불같은 화를 뿜어내는 걸까.



아마도 나는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아이가 결국은 너무도 쉽게 나를 용서할 것이라는 것을.

결국 아이가 갈 곳은 엄마밖에 없다는 걸 알고 부리는 배짱이다.

배짱으로 택하는 쉬운 길이다.



아이를 길러내는 일은


그냥 몸만 키워내는 것 말고

마음도 함께 길러내는 진짜 육아에는


지름길이나 쉬운 길 같은 건 없다.



내가 들인 시간만큼

인내만큼

노력만큼

딱 그만큼 아이는 자라난다.



본래 나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라는 핑계로 조금은 게으른 엄마였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노력하는 엄마가 됐다.

아이의 사랑을 먹으며 자라나는 나는 행복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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