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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또집 Sep 16. 2024

미안해. 손 잡자. 화해해

작은 손을 내밀었다

내 첫 아이가 27개월이 됐다.

말이 막 터지기 시작한 지 약 3개월 정도 됐을까,

이제는 말이 제법 통한다.



사실 말이 통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런 말을 대체 어디서?'

하는 생각을 하루에 열 번 정도는 한다.



내 하루의 마무리는 대부분 이렇게 지어진다.

아이와 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

그리고 그 잠자리 대화를 아이가 잠든 뒤 퇴근하는 남편에게 전하는 대화.



매일 꼬깃꼬깃 주머니에 모아와

나에게 전해주는 아이의 하루는

엄마와 아빠에겐

하루를 살아가는데 없어선 안 될 영양제가 된다.



하루는 남편이 말했다.

"애기랑 나눈 말들을 글로 기록해 보는 게 어때? 말로만 사라지는 게 아쉽다."



맞는 말이다.



난 하루하루 받는 내 아이의 말의 온기를

그리고 내 마음에 전해진 온도를

흘려보내지 않고 한 곳에 모아 담아 보기로 했다.






아이가 입원을 했다.

폐렴이라고 한다.



아이가 약 2년 간 자라면서

총 4번의 입원을 했다.



하지만 이번 입원은 뭔가 다르다.

꽤나 독한 균이 아이의 몸에 들어와

센 약에도 끄떡없이 아이를 사근사근 갉아먹고 있다.



열이 39도가 넘어도 신나게 뛰어놀기만 하던 아이의 얼굴에

이번에는 짜증이 잔뜩 묻었다.



얼굴에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유난히 빨갛고 도톰한 입술에선 찢어지는 고함만 나온다.



평소라면 아이의 그치지 않는 눈물에

어른답지 않게도

터질듯한 화가 났을 법하다.



그렇지만 그저 건강해지기만을 바라는

잃어봐야 소중함을 아는 내 얄팍한 마음이

이번에는 꽤나 인내심을 품었다.



약 40분쯤 아이의 눈물을 기다려줬다.

충분한 눈물을 흘리고 나서야

아이는 스스로 진정을 했다.



울음을 그치고

나에게서 조금 물러서더니 말한다.

"미아내. 손, 잡댜. 하해해."

("미안해. 손 잡자. 화해해")



(떼를 써서) 미안하다는 아이의 말에 한 번

미안하니 손을 잡자며 내민 손에 또 한 번

뒤이어 나온 '화해'라는 단어에 또 한 번



놀라움과 기특함과 감동이 마음속에 뒤엉킨다.



평소 나는 아이에게

사과와 감사를 전하는 용기를 알려주고 싶었다.

"미안해", "고마워"

두 말을 숨기지 않고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그리고 그날들이 모여서일까

울음을 삼켜내고 먼저 내민 이 고사리 같은 손이

장하기만 하다.


한바탕 울음 후 당근 한 입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 실수를 그저 실수에서 멈추기도

후회에서 멈추기도

반성과 수정까지 도달해 멈추기도 한다.



너는 내 작은 아이.

나중에 네 키와 손이 엄마를 훌쩍 뛰어넘더라도

네가 "미안해."라는 말과 함께 내민 손을

몇 번이라도 잡아줄게.



언제고 문을 박차고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잘못을 바로잡을 용기를 채워갈 수 있는

그런 집이 돼줄게.



언제라도 미안해 한 마디만 가지고

품에 안겨줘.

그거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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