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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ul 28. 2024

폭염에 등산 갔다 죽을 뻔한 이야기

연일 폭염과 게릴라성 폭우가 이어지고 있다. 토요일에만 유독 쏟아지는 비는 주말 산행객 약을 바짝  올렸다. ‘학기말 몸이 만신창이가 대수랴?’, ‘비 쫄딱 맞아도 이번엔 간다!’     

보통 여름 등산은 새벽에 올라야 한다. 그래야 더위 절정을 피해 하산할 수 있다. 그런데 토요일 새벽 6시 교사 온라인 모임까지 하느라 시작 시간이 오전 11시였다. 화랑대역 계단을 올라오는데도 벌써 숨이 턱 막힌다. 불암산? 수락산? 뭐, 까짓 거 그래봤자 둘레길 수준일 텐데... 하는 산행경력 수년 아줌마의 거들먹거리는 마음이 마음속에 똬리 틀고 있었다.      

AI가 그려준 친구들과 산행 나선 그림.


숲길로 들어서니 시원한 공기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가방에 얼음물 2통, 오미자 얼음물 800m 리터, 방울토마토, 수박, 달콤 호밀빵, 여분의 옷가지를 넣었다. 입맛도 없으니 정상에서 요기만 하고 내려와서 맛있게 밥 먹자는 계산이었다.      

30분을 걸었을까? 산 중턱 즈음에 전망대가 나왔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여름철 보양식 보다 더 좋은 이 바람 그냥 놓칠 수 없지. 엉덩이 깔고 과일 한 점 집어먹는다. 친구 가방에서 시원한 막걸리 한 통이 나왔다. 동네 할머니들 대여섯 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 우리를 보고는 한 잔 달라신다. 말 한마디 붙이기 살벌한 요즘 세상에 난 이런 분들이 좋다. 아이고 어르신, 한 잔 아니, 두 잔도 드리지요. 성격 괄괄한 할머니께서는 나이 들수록 친구가 최고라며 젊은 것도 부러운데 친구들이랑 산 다니는 건 더 부럽다는 말씀을 하셨다.       

1시간 즈음 걸었을까?  땀이 뚝 뚝 떨어진다. 얼굴이 따끔거린다. 자외선 차단제을 듬뿍 발랐는데도 소용없다. 옷은 흠뻑 젖은 지 오래다. 얼음물도 마시고 과일도 우걱거리며 먹었다. 이럴 바에야 소나기라도 한 줄기 쏟아졌으면 좋겠다. 그렇잖아도 일기예보엔 오후 3-4시 즈음 비 소식이 있다.      

불암산은 마지막 바위 기어오르기가 압권이었다. 뜨끈 뜨근한 바위를 거미처럼 딱 붙어 올랐다. 신발과 내 두 다리를 믿으며 앞만 봤다. 마지막 에너지를 불사르는 느낌으로 불암산 정상에 섰다. 출발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사람이 없다. 폭염에 비 예보까지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평주말 같으면 엄두도 못 내는 정상석을 독차지해 본다. 파란 하늘에 둥실 뜬 구름, 좋구먼. 저 멀리 롯데타워, 남산, 그리고 북한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서울 서쪽 구름이 심상찮다. 뿌연 안개 같은 것들이 아래쪽으로 쫘악 내려가 기둥을 만들고 있었다.

“뭐야? 저 끝쪽 비 쏟아지고 있는 거 아냐?”

비구름 기둥이 우리쪽으로 몰려오고 있다.

헐, 진짜다. 구름에서 쏟아지는 폭우가 기둥을 만들었다. 그게 서서히 이동하며 도시를 점령하고 있었다. 재난영화에서나 본듯한 광경, 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번지면서 우리 앞쪽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걸 장관이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아, 쫄려. 하산하자. 폭우 내리면 바위 미끄러워 위험해.”

수락산은 포기했다. 점심상을 접고 부랴부랴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비구름대는 순식간에 우리를 집어삼켰다. 산을 뒤덮으며 폭우를 쏟아냈다.

“안 되겠다. 나무밑에서 잠시만 비 긋자.”     

비는 바가지로 쏟아붓듯 내린다. 우비를 입었지만 소용이 없다. 안개가 자욱하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산꼭대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작은 계곡을 만들며 쏟아져내려 간다.  이럴 때 바위 타며 내려가는 건 위험하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 어느새 바지와 신발은 다 젖었다. 우비 안 윗도리는 땀으로 축축했다. 그러기를 10여분? 거짓말처럼 비가 잦아들었다.


이제 내려가자. 그런데 밧줄 잡고 바위를 타고 내려가는 길이 만만찮다. 미끄럽고 물기 때문에 손바닥이 아팠다. 몸이 긴장하니 여기 자기 근육이 뭉쳤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것이 쉽지 않았다.       

분명 계곡길이 아니었는데 물소리가 들린다. 작은 물길이 여기저기 만들어졌다. 비 그치 뒤 산속은 조용하고 상쾌했다. 풀잎 위 대롱대롱 매달린 작은 물방울들이 예뻤다. 그런데 긴장이 풀려서인지 이상하게 목도 아프고 머리가 깨질 듯했다. 얼굴이 화끈거리며 열감으로 어지러웠다. 속은 또 왜 자꾸 매슥거리는지 모르겠다. 얼음물을 자꾸 들이켰지만 소용이 없었다. 졸졸 흐르는 물줄기 때문에 등산로까지 헷갈렸다. 소나기가 그치면 시원해져야 하는데 습도는 더 높아져갔다. 신발도 철벅거린다.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한숨이 자꾸 나왔다. 심호흡을 했다. 정신 바짝 차리자. 지금은 비도 그쳤고 조금만 내려가면 된다.      

가방이 무겁지도 않은데 어깨가 아파 손으로 가방끈을 잡았다. 뒤따라 오던 친구가 낌새가 이상한 걸 눈치챘는지 가방을 달라고 한다. 너라고 괜찮겠냐 싶었지만 염치 불구하고 넘겨줬다.     

산아래 막국수 맛집에서 국수를 몇 젓가락도 못 먹고 남겼다. 얼음물 몇 숟가락을 넘기다 말았다. 지하철 타고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르겠다.


“내 몸이 이상해. 힘든데 뭐가 힘든지 모르겠어.”

집에 와서 이상한 증세로 식구들을 괴롭혔다.  팔다리 근육통도 아니고 온몸이 아팠다.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배도 안 고프고 먹고 싶지도 않았다. 에어컨을 틀고, 오리털 이불을 둘둘 감고 누웠다. 잠도 안 온다. 끙끙 소리를 내며 앓으니 식구들이 ‘엄살병 엄마’ 못 말린다며 속도 모르는 말을 했다. 남편은 ‘그러게 왜 더운날 말도 안듣고 산으로 쏘댕기냐며’ 도움도 안되는 잔소리 폭탄을 던진다. 물 한 모금도 먹기 싫다. 남편은 약 먹을래? 이온음료 먹을래? 자꾸 성가시게 굴었다. 나중에는 수박이라도 먹으라고 윽박을 질렀다. 수박 몇 조각을 먹고 뒤척거리다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좀 나아졌다. 두통도 사라졌고 속도 편안해졌고 팔다리도 괜찮다. 아, 이제 알겠다. 어제 나는 주제파악 못하고 욕심을 부렸다. 나이와 체력을 무시하고 더위와 폭우를 너무 우습게 봤다. 말로만 듣던 더위 먹는다는 게 이렇게 무섭고 힘든 줄 처음 알았다. 남편은 빙긋이 웃으며 한 술 더 뜬다. “오늘, 날도 더운데 북한산이나 갈까?” 아우, 저 얄미운 남편!!

그나저나


아, 이 아줌마야, 몸 좀 사리고 겸손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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