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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을 견뎌낸다는 것

by 포롱

“선생님, 저 짝꿍 바꾸고 싶어요.”

“왜? 무슨 일 있어?”

“*준이 물건이 책상 위로 자꾸 넘어오고, 의자도 삐딱해서 제 공간을 침범해요. 너무 힘들어요.”

우리 반 모범생 현*가 하소연했다.

“*준이한테 말은 해봤어?”

“몇 번이나 했는데 소용없어요.”


*준이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책상위 물건 정리와 개인 공간 존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듣고 돌려보냈다.

며칠 뒤, 현*가 쪽지를 내밀었다.

“선생님, 엄마가 전해달래요.”

깨알같은 글씨의 편지에는 딸이 짝꿍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전화 통화를 요청하는 말이 담겨 있었다.


학기 초 만난 현* 어머니가 떠올랐다. 당차고 욕심 많고 예민한 딸을 키우는 게 벅차다고 하셨던 분. 분명 집에서 현*가 얼마나 징징거렸을지 모녀의 대화가 눈에 그려졌다.

수업 시작 전에 *준이를 다시 불렀다.

“현*가 힘들어하는 건 알고있지? 벌써 여러 번 말했는데도 여전히 힘들어서 짝꿍을 바꿔달라고 하네. *준이 생각은 어때?”

그 말에 *준이의 눈이 금세 그렁그렁해졌다. 친구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뜻으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또래보다 작은 체구에 장난은 많지만 마음은 여린 아이.

“일단 우리 오늘 하루만 노력해볼 수 있을까?”

끄덕이는 *준이.

“그래, 오늘 하루 *준이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다시 얘기해보자. 현*도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겠니?”

현*도 수긍해준다.


수업 중간중간 살펴보니, *준이가 나름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일과가 끝날 무렵, 현*를 불렀다.

“오늘 하루 어땠어? *준이가 노력하는 게 느껴졌니?”

내심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했지만, 현*의 말은 예상외였다.

“긴장할 땐 괜찮은데요, 조금만 방심하면 또 넘어와요. 그래도… 자리를 바꾸고 싶어요.”

쉽게 자리를 바꿔 줄 수도 있지만 내가 결론을 내리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해결해보고 싶었다.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과연 2학년 아이들이 묘안을 낼 수 있을까?

좁은 공간에서 부딪히는 게 일상인 아이들. 사진은 직업체험 놀이중.

“선생님, 좀 도와주세요. 현*를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그냥 바꿔줘요.”


“그럼 누가 *준이 옆에 앉을래?”

“제가 할게요!”

성격 좋은 *윤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그래? *준이 물건이 넘어와도 괜찮아?”

“조금 싫긴 한데, 현*처럼 힘들지는 않아요.”

쉽게 해결되나 싶었는데, *윤이 짝꿍 서*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는 *윤이랑 계속 같이 앉고 싶어요.”

어라, 예상 못 한 복병이다. 그러자 얌전한 채*이가 조심스럽게 손을 든다.

“사실… 저도 *헌이랑 있기가 힘들어요. 현*가 바꾸면, 저도 바꾸고 싶어요.”

그 순간부터 여자아이들 몇 명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짝꿍이 산만해서 힘들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현*의 당황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꺼낸 일이 생각보다 크고 복잡한 문제였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칠판에 글씨를 썼다.

‘짝꿍의 좋은 점을 크게 보자.’

자리 바꿀 때마다 반복하던 말이지만, 이번엔 다르게 와닿았으면 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우리 한번 얘기해보자.”

아이들의 입에서 내가 하고 싶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잘 모르던 친구도 한 달 지내다 보면 좋아져요.”

“처음엔 불편해도 나중엔 괜찮아질 수 있어요.”

"짝꿍이 힘들어 하는 건 내가 노력해서 고쳐야 해요."

“그 친구도 내가 싫은 걸 알면 더 조심할 수 있어요.”

하교길에 현*를 잠깐 불러 세웠다.

“선생님은 너를 꼭 도와주고 싶어. 그런데 자리를 바꾸는 게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더라. 어떻게 생각해?”

한숨을 푹 쉬는 현*. 똑똑한 아이라 벌써 상황을 다 파악한 듯했다.

“*준이도 이제는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았을 거야. 아마 엄청 노력할 거야. 그리고 만약 또 힘들어지면, 선생님한테 비밀 신호를 보내줘. 그럼 선생님이 바로 가서 짝꿍 책상위 물건 정리, 바른 자세를 고치도록 도와줄게. 어때?”

고개를 끄덕이는 현*. 함께 비밀 신호를 정하고 나서야 환하게 웃는다.

“그럼 우리 다음 주까지 다시 한 번 노력해보자.”

교실로 돌아가던 현*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따뜻한 기운이 손끝에 맴돌았다.

퇴근 전, 현* 어머니와 통화했다.

“예민한 딸한테 얼마나 시달리셨을지 짐작돼요.”

“그걸 알아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선생님…”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맞다. 아이 하나가 자라기 위해선 부모와 교사, 그리고 친구들이 함께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인 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마주하고, 풀어갈 수 있도록 옆에서 길을 밝혀주는 사람이다.

가끔은 발을 내딛기 전 작은 등불 하나를 켜줄 뿐,

결국 길을 걷는 건 아이들 자신이다.

오늘도 나는 그저, 옆에서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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