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중급자이지만 중급자라고 당당히 말하기 어려운 그 취미에 대하여

by 신윤호

2013년 강원도 고성 모 부대의 체력단련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헬스라는 운동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는 유튜브도 활성화되어있지 않아서 '패션근육'을 추구하는 동기와 일부 선임들에게 어깨너머로 운동을 배웠다. 패션근육의 기초는 가슴과 어깨였고, 그로 인해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가슴 / 어깨라는 지옥의 2 분할 운동을 매일같이 했었다. 아무도 등운동의 중요성은 설명해주지 않았고, 나는 축구를 하니까 하체는 튼튼하지라는 생각으로 역시 하체 운동도 스킵하였다. 심지어 군부대의 체력단련 시험도 푸시업(그리고 윗몸일으키기) 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다른 부위의 운동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몸이 말리기 딱 좋은 방법으로 운동을 입문하였다.


군대를 전역하고는 '홈 트레이닝'(일명 홈트)에 빠지게 되었다. 성격적으로 나는 가성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그래서 푸시업 기반의 홈트를 한창 하게 되었다. 실제로 '재미어트'와 같은 인플루언서가 초기 헬스 유튜브/페이스북 시장을 리드했고, 그런 부채질에 따라 더더욱 푸시업을 열심히 하게 되었던 것 같다.(푸시업은 물론 굉장히 좋은 운동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푸시업 100개만 하면 권상우 몸을 만들 수 있다는 식의 말들이 격언으로 돌곤 했다.(지금 우리는 이 운동법을 '사이타마' 운동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턱걸이에 도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1-2개를 간신히 했고 그마저도 팔로 당기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턱걸이가 좋은 것은 학교나 집 앞에 있는 철봉에서 매일같이 할 수 있었고, 나는 인터넷에 유행하는 연습법으로 매일 5세트로 점프의 도움받기 / 매달려서 버티기 등의 치팅을 모두 활용하여 서서히 개수를 늘려나갔다. 한창 잘할 때는 20개까지 하곤 했으니 이 정도면 턱걸이는 당당하게 잘한다고 할 수 있겠다.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철봉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자취방 앞에도, 회사 앞에도 철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 현질을 해야 되는 시기라고 결심을 하고 헬스장에 등록을 했다. 유튜브를 보면서 했으나 이론만으로는 운동을 잘하는 게 영 어려웠다. 6개월 정도의 헬스 생활을 청산하고, 갑자기 핫해진 크로스핏에 도전하게 되었다. 크로스핏은 운동 강도가 굉장히 강했지만 분명 그룹으로 하기 때문에 재밌었고 그래서 3개월 등록기간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크로스핏의 큰 단점은 그룹 트레이닝으로 개개인의 실력을 정확히 알고 정밀한 지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고, 나는 클린(clean) 동작을 수행하다가 손목 인대가 파열되고 만다. 그래서 생애 첫 큰 수술까지 단행하고 한동안 재활만 했다는 슬픈 얘기로 이어진다.


재활이 끝나고 난 후 몸이 근질거리던 나는 다시 한번 헬스장을 두드린다. 헬스장에서 재활기간으로 인해 약해진 나의 몸을 다시 올바르게 고치고 싶던 의지가 강하던 나는 PT를 등록하였다. 선생님을 잘 만나는 게 제일 중요한데, 체험 PT로 어느 정도 검증이 되었다면 나는 초급자들은 PT를 무조건 하라고 추천한다. PT를 통해 나는 기초를 제대로 닦을 수 있었고, 손목 때문에 약했던 오른팔은 지금은 꽤나 강력해졌다. 나름 눈물겨운 진정한 부활을 PT와 함께 달성하였다.


나는 앞으로도 다른 운동에 도전할 생각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헬스는 깔고 갈 것 같다. 헬스를 다시 제대로 한 지 5년 차 나에겐 매일 분할을 고민하게 하는 강박증이 생겼다. 강박을 갖고 가라는 얘기를 모두에게 하지는 않겠지만, 일반인 그리고 직장인에게 결국 제일 적합한 운동은 헬스라고 생각한다. 건강히 맛있는 걸 오래 먹으려면 근력 그리고 심장운동을 적절히 하라는 잔소리가 입에 붙어버렸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헬창이라는 단어를 들어도 괴리감은 크지 않다. 오늘은 이렇게 결국 헬창이 돼버린 나의 운동 역사를 회고해 봤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직장인들은 공감할만한 '일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