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사랑했고, 많이 미웠고, 많이 고마웠어요
사랑의 처음과 끝을, 그 사이의 허무함과 애틋함을, 철학자의 눈으로 풀어낸 책이다.
몇 번이고 덮고 다시 펴며 읽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조용해지지 않았다.
책은 한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다투고 멀어지는
‘사랑의 생애’ 전체를 담았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 모든 것을 지극히 혼자서 생각하고 기억하고 되새기며 말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투에 끌렸다.
어딘가 조용히 울고 있는 사람의 내면 같았다.
말은 담백했지만
그 담백함 속에 무너지는 마음이 느껴졌다.
/
어느 날 늦은 저녁이었다.
좋아했던 사람이 내게 말했다.
“우리, 그만 보자.”
그 말이 꼭 마침표 같았다.
생각보다 덜 아픈데,
그래서 더 오래 아팠다.
아픈지도 모르게, 안에서 조용히 멍이 드는 느낌.
사랑은 그렇게 끝났다.
그때 이 책을 다시 꺼냈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처음 읽었을 땐 연애가 궁금해서였고,
이번에는 사랑이 아파서였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왜 사랑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모름 자체를 설명해준다.
사랑은 논리가 아니라고,
사랑은 심리와 상상과 투사의 혼합물이라고 말해준다.
그래서 읽는 동안 마음이 자주 조용해졌다.
이해받는 느낌이었다.
사랑을 끝낸 사람도,
사랑에 무너진 사람도,
이 책을 읽을 자격이 있다.
드 보통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안에서
결국 자기 자신을 본다”고.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내가 사랑했던 건 결국 나였구나,
그 사람을 통해 보고 싶었던 나였구나.
그 사실을 조금 알게 되자,
그를 덜 미워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더 안아주고 싶어졌다.
/
이 책을 다 읽고, 나는 잠시 울었다.
사랑에 실망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오해하고 있었던 나에게 미안해서.
나는 사랑이 나를 완성시켜줄 거라고 믿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모든 결핍이 메워질 거라고.
그 믿음은 애틋했지만, 동시에 위험했다.
사랑이 해줄 수 없는 일을 사랑에게 기대했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을 해체하면서도
사랑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들여다보자고,
더 정직하게 바라보자고 말했다.
“사랑은 우리가 서로의 결핍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나는 누군가의 결핍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결핍을 채워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을까.
질문이 많아졌고,
그 질문들 사이에서 조용히 머물게 되었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은 언제나 깨지기 쉬운 유리 같다.
조심히 다루어야 하고,
때로는 다쳐야 비로소 그 유리의 투명함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사랑에 실패한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다.
이별 후에도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을 위한 책이고,
사랑이 아프지만 다시 해보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
나는 이제 사랑을 덜 이상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은 구원이 아니라 동행이라는 걸,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불완전한 공감이라는 걸
조금은 알게 되었다.
사랑은 내가 아닌 타인을 바라보는 일이지만,
결국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더 많이 본다.
그게 고통스럽고, 그래서 다시 돌아보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를 다시 떠올렸다.
우리는 끝났지만,
그와 나눴던 감정은
여전히 내 안에 작은 숨결처럼 남아 있다.
그 숨결을 이제는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 감정 덕분에 내가 조금 더 깊어졌으니까.
사랑을 했던 나는,
그만큼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는 증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