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어글리 19화

어글리 19 _나는 너를 모른다

by 햇빛투게더

병실 침상에 누워있던 해령은 어슴푸레 눈을 떴다.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대면한 미운 딸의 기척에 책장을 넘기던 은발의 여사 고은애는 무덤덤하게 시선을 돌려 해령을 바라보았다.


“이제 일어났니.”


해령은 아이처럼 눈을 비볐다.


“엄.. 마.. 야?”


마음 한 부분이 어쩐지 짜르르했지만 은애의 마음은 아직 표정을 뚫고 나오진 못했다.


“어색하구나. 그 말.”

“근데 엄마.. 왜 이렇게 늙었어? 머리가 하얘...”


기막혀 해령을 보는 영애다.


“영어과외 하고 나 레슨 가야 하는데...”


하다가 오그라든 손을 보고 기겁하는 해령이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엄마를 바라보는 해령인데..


“나.. 왜 이래? 내 손...! 펴지지가 않아!!!”


벌떡 일어나 병실 욕실로 달려가는 해령이다. 거울에 비친 해령의 모습은 이리저리 삶에 치인 중년의 여자였고 받아들일 수 없는 해령은 폭주했다.


“이 사람, 누구야.. 엄마? 이 아줌마 누구냐고!!!!!!!”





해령은 영애의 손에 이끌려 의사와 대면했다.


“이해령 씨 지금 몇 살이에요?”

“열아홉 살...”

“그렇군요.”

“저요... 미국 가야 해요. 음대 입학해야 된다구요. 근데 손이 이상해요, 선생님. 바이올린 잡을 수가 없어요.”

“손은 화상을 입은 거 같은데 기억 안 나요?”

“전혀요...”


복도 벤치에 앉아 영애는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한선호]를 선택하고는 통화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심하는 눈치다.





스피커폰으로 들리는 외할머니의 목소리에 선호와 은호는 당황스러웠다.


“그러니까 시간의 점프를 모르고 있다는 건가요?”

[현재까지는 못 받아들이는 눈칩니다. 유학 얘길 계속하는 거 보니 열아홉 쯤으로 인식하나 봐요.]

“혹시.. 저희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건 예정에 없던 상황이라 혼란스럽군요.]

“일단 내려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선호는 은호를 바라봤다.


“난, 부산에 갈 건데 넌 어떡할래? 맘대로 해.”

“우리가 도움이 되겠어?”

“힘쓰는 일이라도 해야지. 운전이나... 외할머니가 얼마나 난감하시겠어.”

“오빠 넌 어떻게 외할머니 소리가 그리 술술 나오냐. 우리한테 존댓말로 선 긋는 양반인데.”

“.............”


툴툴거리면서도 핸드백 집어드는 은호다.


“가게?”

“가자며. 어휴 귀찮아.”

“그래.”

“몇 달간 유럽에 가야 해. 그전에 여동생 노릇이나 해줄게.”

“유럽 왜?”

“오빠 니동생 프로페셔널인 거 까먹었냐. 5년 전에 잡힌 연주회 해야 돼.”

“때려쳤다더니 보험 엄청 들어놨구나.”

“내가 뭐라고 5년 전에 티켓값을 내냐고... 그거 고마워서 약속 지키는 거야. ”

“...”

“갈 거면 빨리 가자.”



은호는 차창 너머 선호와 봉이의 모습을 본다. 며칠의 이별이 저토록 애틋할까. 꿀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금방 올게’ 하는 선호의 입모양과 가려는 선호의 손을 가로채며 놔주지 않는 봉이.

은호는 고까워 보며 팔뚝에 돋은 닭살을 긁어냈다.


“좋아 죽네. 죽어. 겨우 며칠인데 어휴..”


골질 하듯 클락션 빵 울리려다가 손을 거두며 문득 정민을 떠올렸다. 그래, 잠시 잊었던 그 감정. 정민은 도대체 뭘 하고 지내나. 콘서트를 끝으로 얼굴은커녕 전화조차 하지 않은 그였다. 쿨하게 보내준 그였지만 쿨하지 못하게 과거의 꽃길을 홀로 걷고 있다. 쪽팔려...


그때 정민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무 반가웠지만 한 번에 전활 받지 못하고 잠시 뜸을 들이는 은호다. 신호가 끊어지기 직전 무심한 목소리로 전활 받았다.


“어. 왜.”

[좀 쉬었어?]

“대충.”

[슬슬 공연 준비해야지.]

“그 회사 아티스트한테 올인해.”

[니 공연 다 마칠 때까지 누가 수습해. 내가 해야지. 프리랜서로 써주라.]


사실, 막막했던 차였다.


“그러시던가. 나 며칠 부산에 가.”

[거기서 만나.]

“왜?”

[보고 싶어서.]


당황했지만 애써 모른척하는 은호다.


“어디 있는지 안 가르쳐줄 거야. ‘클레어 한 인증샷’ 하나 정돈 뜨겠지. 알아서 찾아내.”


지 할 말만 하고는 전화 끊는 은호는 어쩐지 양쪽 입꼬리가 광대로 향했다.




병실은 비어있었다.


“검사받으러 갔나 보네.”


그때, 문이 열리고 해령과 은애가 들어왔다.


“왔어요?”


선호가 은애에게 꾸벅 목례를 하는 동안 해령은 은애의 뒤로 바짝 숨으며 그 둘을 경계했다.


“엄마.. 저 사람들 누구야..?”


은호는 해령 앞으로 저벅저벅 다가갔다.


“나 몰라요?”

“몰라..요”

“봐. 다시 잘 보라고. 어떻게 날 몰라? 당신이 망가뜨린 날 보라고.”

“몰라. 모른다고. 모른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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