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의 행복찾기
키위나무 그늘에 자리를 펴고 엄마, 아빠와 누웠다. 여름 냄새 품은 바람을 맞으며 부모님이 키우신 포도와 옥수수를 먹었다. 포도 한 알 먹고 엄마 얼굴을 보고, 옥수수 하모니카 한번 불고 아빠 얼굴을 보았다. 마흔두 살 먹은 딸이 여덟 살 딸이 된 듯했다. 만족스러움을 잴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 눈금을 가득 채울 만큼 기분이 좋았다. 내가 느끼는 이 좋은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며칠 후 나는 이 감정의 이름을 ‘기쁨’이라고 붙여주었다. 그 순간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나는, 참 기뻤다.
‘머물러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여덟 단어」 박웅현 님의 책에서 발견한 괴테의 문장이다. 나도 괴테처럼 나의 현재에게 기쁨이 머무르도록 명(命)하고 싶다. 하지만 나의 명령에도 현재는 달아나버린다. 아름답다는 칭찬도 소용이 없다.
“무엇을 기록해야 하냐고요?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것들을 기록하세요.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질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기억할 수 있습니다. 기억해두기만 한다면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중에서, 김신지-
이 글귀를 읽고 나는 오열했다. 엄마 손의 따뜻함, 아빠의 걸음걸이를 내가 사랑했음을 알게 되어 울었다. 엄마의 웃음소리, 아빠의 농담을 너무나 기억하고 싶은 내 마음을 알게 되어 마음이 아팠다.
이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내가 만난 기쁨의 순간을 머무르게 하려고, 나는 기록하기로 했다. 책 제목처럼 말이다.
“오늘 엄마한테 들으니까 니 닭 두 마리 사서 삶아 먹었다 하대? 아빠도 내일 엄마랑 같이 마트 가서 닭 사올란다. 4시부터 끓여서 저녁에 먹구로. 맛있는 거 먹어야 저녁에 술 안 먹지. 허허.”
“욕봤다. 니가 욕을 봐서 하느님이 도와주셨는갑다. 니 고생했는데 니 기분 좋아지라고 전화했다.”
아빠가 이렇게 좋은 말들을 내게 해주셨네. 아빠의 목소리가 내 블로그에 붙잡혔다. 어디 가지 못하고 나랑 딱 붙어있다.
예쁘게 달린 호박, 오이, 옥수수를 잘 키운 자식처럼 자랑하는 엄마, 기차에서 삶은 달걀을 맛나게 드시는 엄마, 딸이 사준 스카프를 신나게 목에 두르시는 엄마, 시력이 안 좋으셔서 안내문을 바짝 가까이 대고 읽으시는 엄마, 휴양림에 가서 직접 밧줄 타고 오르기에 도전하시는 엄마, 전자마트에서 온풍기 하나 사고서 점원에게 사은품 안 주냐고 말하는 엄마까지. 엄마의 모습과 엄마의 이야기가 달아나지 못하고 내 마음에 꼼짝없이 붙잡혔다.
엄마 아빠와의 시간을 붙잡으니 더욱 분명한 ‘사랑’이 보였다. 블로그에 붙잡힌 아빠의 말씀은 나를 토닥여주었고 예쁜 사진 속 엄마는 나에게 웃어주셨다. 기록은 사랑이라는 종착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함께하는 순간을 더 만들고 싶어 한 번이라도 더 부모님을 뵈려고 한다. 나중을 기약하지 않고 지금 시간을 만드려고 노력한다. ‘나중에 부모님께 효도할게요.’라고 다짐했던 건 어릴 적 어버이날 쓴 편지로 충분하다.
함께하는 시간은 부모님께도 큰 기쁨이다. ‘자식은 품 안의 자식이다.’, ‘자식은 태어나서 세 살까지 효를 다 한다.’라는 말은 자식이 부모 곁에 머문 순간이 기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어린 시절 아빠와 쌓지 못한 정을 이제라도 차곡히 쌓아가는 재미가 있다. 어릴 적 미처 다 주지 못한 사랑을 표현하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사랑하는 딸의 케미는 훌륭하다. 아빠가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었나? 딸을 ‘심쿵’하게 한다.
“내 듣고 싶은 말이었다아이가, 그 말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이가!”
지독한 감기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딸을 재촉해서 병원에 보내고, 며칠 새 또렷해진 딸 목소리에 아빠는 다행의 한숨과 감동의 말을 전해주신다. 또 하나의 아름다운 순간을 선물 받은 나는 그저 ‘기쁨’이다. 사랑 품은 아빠의 말을, 그 순간을 기록하며 기쁨을 누린다.
머물러라, 이 순간이여!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기쁨의 순간들이 정말로 나에게 머물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