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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 손은 약손

K장녀의 행복찾기

by 장소영

부재중 전화에 ‘아빠’

전화를 보자마자 먹먹한 한숨이 먼저 나왔다. 아빠가 심각한 허리 통증을 못 참고 전화하신 걸 알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빠는 아프시다는 말 한마디 없으시다가 치료나 수술을 다 마친 후에 통보하셔서 애가 탔었는데, 이제 일흔이 넘으신 아버지는 딸을 찾고 또 찾으셨다.


이미 두 곳의 병원에서 진료를 보았고 MRI 검사 결과는 수술할 정도가 아니라는데 아빠의 허리 통증은 너무 심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도 기어서 가셨고, 고작 몇 걸음 걷고서 주저앉으실 정도였다.

대학병원 진료를 앞두고 계신 아빠는 바로 수술을 받고 싶어하셨다. 아빠 말대로 수술하자고 해야 할지, 아직 디스크 수술은 아니라고 아빠를 설득해야 하는 건지…. 어려워서인지 피하고 싶어서인지, 나는 아빠가 준 문제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의 하소연에 쫓겨서야 나는 장녀의 역할을 마주했다. 디스크 수술에 대해 검색을 하고 수술 경험이 있는 분을 찾아 정보를 얻었다. 유명한 명의 선생님 영상을 보며 공부도 했다. ‘아직은 수술이 아닌 운동이다.’라는 답을 찾았고, 아빠를 설득하기 위한 말들을 정리했다.


내가 찾은 답을 들고 아빠에게 가는 날, 그날은 평소보다 오래 걸려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쏟아진 눈물 때문이었다. 내가 찾은 답이 정답인지 확실하지 않아 답답했고, 아빠의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 나에게 너무 무거웠다. 펑펑 쏟아지는 눈물에 못난 마음을 흘려보내고 나니, 나는 부모님을 씩씩하게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번호 붙여 준비해 둔 말들을 하나씩 풀어냈다.


“아빠, 이거 우리나라에서 최고 유명한 척추 전문 의사 선생님 영상이에요.”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아빠와 함께 유튜브를 보았다. 영상 속 의사 선생님 말씀에 아빠와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되도록 허리를 구부리지 않습니다. 적게 구부리고 천천히 구부립니다. 허리를 뒤로 넘기는 신전 동작을 해보세요.” 아빠는 발뒤꿈치 드는 운동을 몇 번 해보고 허리 쿠션을 받쳐 누워보시더니 표정이 바뀌었다. 아빠가 운동을 해보겠다, 그리고 주사 치료도 받아보겠다고 하셨다.

“네가 시킨 대로 하니까 좀 낫다.”

잠깐의 운동으로 심했던 통증이 나아졌을 리 없는데, 아빠는 분명히 낫다고 하셨다. 아픈데도 웃음을 보여주시는 아빠를 보니, 어깨에 올려진 짐이 무겁다며 울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진즉에 아빠의 아픔을 알아채고 아빠를 돌봤어야 했다. 만약 내 아이가 아프다고 했어도 이렇게 미적거렸을까? 인터넷 검색을 하고 블로그나 카페에 들락거리며 정보를 찾았을 거다. 병원을 알아보고 하루라도 아이를 덜 아프게 해주려 애썼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미 아빠의 보호자였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아니,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모른 척하고 있었다. 마땅히 맡아야 할 내 역할을 거부하고 있었다.

“똑 똑 똑, 보호자님!” 하고 부르는데 오히려 아빠를 쳐다보고 동생에게 눈치를 주었다.


어느새 작아진 아빠는 딸의 마음이 크기를 기다려주셨다. ‘어서 나이 든 아비의 보호자가 되어주기를’ 그리고 드디어 보호자가 되어준 딸이 고맙고 든든하셔서 아파도 웃음을 보여주셨을 거다.

‘우리 아빠, 많이 아프셨지요? 우리 이렇게 해볼까요? 병원에 가 봅시다!’

아들, 딸 돌보듯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을.

보호자는 진짜 걱정을 해주는 사람이다. 진짜 걱정은 아픈 사람도 덜 아프게 해준다. 아픈 곳에 ‘호~’ 해주는 입김이, 배를 문질러주는 약손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처럼. 그렇게 내가 보호자가 되어 아빠를 만난 날, 아빠는 정말 덜 아프다 하셨다.


엄마 아빠의 든든한 보호자가 된 나는, 이제 먼저 부모님께 묻는다.

“아빠, 허리는 어때요?”

“엄마, 오늘 운동했어요?”

나는 우리 엄마, 아빠의 아픔을 낫게 할 약손을 가진 보호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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