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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정 Jul 24. 2024

옥수수 밭과 에네켄 농장

7월은 옥수수를 수확하는 시기다.     

1개월 전 감자를 캐고 이어서 옥수수를 따러 경기도양주 B형님의 농장에 갔다. 지난 3월 말쯤 B형님과 함께 옥수수를 심었는데, 4개월 만에 옥수수로 큰 숲이 생긴 것을 보니 자연의 섭리가 위대하게 느껴졌다.               

7월 중순이 되니 옥수수가 적당하게 자라서, 지금부터는 적당하게 자란 것부터 수확하면 된다. 나는 옥수수 밭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밭 한가운데에 들어가니 마치 정글 같았다. 혹시 글을 읽는 분들 중 정글이라는 표현이 좀 과장된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가 본 분들은 옥수수밭도 하나의 작은 정글 숲이라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밭에 심어져 있는  옥수수들은 나보다 키가 크다. 대부분이 내 키를 훌쩍 넘겼고 사잇길을 사람이 지나가려면 몸에 이파리들로 쓸릴 수밖에 없었다.      

정글 같은 밭답게 안에는 모기와 같은 곤충들의 본부 같았다. B형님이 잘 익은 옥수수를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서 선별해서 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정글 같은 환경에서 옥수수를 따며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오래전에 읽었던 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 ‘검은 꽃’에 나오는 “에네켄 농장이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였다. 에네켄 농장은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온 한인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서 일했던 농장이다. ‘에네켄(스페인어: henequen)’은 용설란과의 식물로, 노끈, 밧줄, 해먹, 기타 생활용품 등을 만드는 섬유의 원료이다. 밀을 포장하는 포대용 굵은 밧줄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19세기 중반부터 농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멕시코에 이주한 한인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노동하였으므로, 멕시코 한인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검은 꽃’은 한일합방 전 혼란한 사회에서 한 가닥의 희망을 품고 떠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인천의 이민사박물관에 가서 좀 더 생생한 당시의 상황을 확인한 바가 있다.  박물관에는 당시 이민자들이 타고 간 배와 긴 항해 동안의 생활, 에네켄 농장의 실제사례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어서 소설의 내용이 더 실감 나게 연상되었다.     


그들은 새벽부터 오랜 시간 에네켄 농장에서 일을 했다. 그러나 입에 풀칠할 정도의 임금과 최소한의 집을 제공받고 살았기 때문에 미국으로 가는 등의 외부세계로 가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러면서 그 긴 시간을 에네켄에 살을 찢겨가며 견뎌냈다.      


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먹을 만큼 옥수수를 따서 정글 같은 밭에서 나왔다. 나오니 다시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덥고 습한 날씨지만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옥수수를 다듬는 방법도 B형님이 알려주었다. 최소한의 껍질만 남기고 다듬었다. 그래야 보존이 잘된다고 한다.   

   

집에 가지고 가서 신선도 100%의 옥수수를 삶아서 먹으니  꿀맛이다. 아내와 함께 옥수수를 먹으며, 같이 갔었던 이민사박물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현재 우리의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행복한지?” 자신이 게을러지면 새벽시장에 가보라는 이야기가 있다. 짧은 옥수수밭 체험이 나에게 많은 생각과 함께 현재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고맙다 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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