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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Oct 05. 2024

고딩 얄개들의 한라산 등반

1969년 가을 by 상우

막바지 인생
우리 앞의 낭떠러지
1969년 가을 고딩 얄개들-1박 2일 한라산 등반을 마치고 관음사 하산 코스를 내려와 제주목장을 통과하는 5·16도로 길가에서 제주시로 향하는 귀가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군용배낭을 지고 교모를 쓴 모습이 웃긴다. 유일하게 교모를 쓰지 않고 건방 떨며 선 者가 바로 나.     

  

누구에게나 고교 시절은 혈기가 충만한 젊음의 계절이다. 이유 없는 반항, 주체못할 질풍노도! 어린 청춘의 감정은 제주의 거센 바람과 파도처럼 학창의 일상을 휩쓸어버리기도 했다. 청춘의 에너지를 억누르기만 하던 학교 분위기는 견디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우리는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완전군장을 꾸리고 한라산을 1박 2일로 오르곤 했다. 지금과 같은 등산용품이나 캠핑장비가 없던 시절이었다. 석유 버너에 군용반합, 담요, 배낭, 탄띠, 군도, 수통 그리고 텐트까지 거의 군용품이었다. 사진 속 일박(一泊) 야영 용품들은 모두 야메로 구한 것들이었다. 한라산 산행이 얼매나 즐거웠던지 월요일 시험을 앞두고도 한라산을 올랐다 담임에게 들켜 심하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어두운 밤 산속에서 휘파람새 소리 들으며 야영하고, 시냇물 떠와 밥 지어 먹고, 이른 아침 깨어나 산속 열매를 따 먹는 재미는 우리에게 시원한 해방감을 주었다.     

 

어느 등산부 선배가 해주었던 말이 있었다. “한라산에서 앞을 못 볼 정도의 짙은 안개를 만나면 무조건 그 자리에 멈추고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려라.” 이날은 우리가 그런 안개를 만났던 날이었다. 짙은 운무로 바로 눈앞도 보이지 않자 우리는 큰 바위 곁에서 하산을 멈추고 안개가 걷히길 기다렸다. 꽤 긴 시간이 흐르고 안개는 사라졌다. 우리는 하산로에서 벗어나 산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얼마쯤 앞에는 천 길 낭떠러지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칠십 고개를 넘어선 우리, 안개 속을 몇 번이나 헤매야 안전한 하산(下山)을 끝낼 수 있으려나? 앞서 가버린 뒷것, 김민기의 노래 ‘봉우리’가 생각난다. 마지막 인생 고갯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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