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한 작가를 만났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 1

by sunsun

"내가 어쩌다 저런 인간을 만났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만남은 기묘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의 끝은 나의 잔잔한 호수 영역 위로 날아든,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한 예리한 눈빛의 "때까치"였다.

첫 만남

2023년 8월, 동네 이웃사촌 정은 언니의 소개로 나는 김 작가를 만났다.

'내 주변에 작가가 산다.'

누군가에게는 신기한 일이겠지만, 사실 그때 내게 김 작가는 딸아이의 글쓰기 선생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가 훗날 내 삶을 쥐락펴락할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님'이 될 줄은, 그때는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나는 19년 8개월이라는 세월을 S그룹 회사에 매여 살았다. 4조 3교대 근무. 나의 영원한 밥줄이 되어줄 든든한 회사라고 믿었지만,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부딪혔던 나는 결국 2020년 2월, 그곳과 영원히 안녕을 고했다.

퇴사 후, 나는 오로지 주부로서의 삶을 살았다.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 아이들과 함께 코로나 시국을 나름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회사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맞이한 자유. 그것은 평화로웠지만, 동시에 어딘가 공허했다. 19년이라는 시간이 내게 남긴 것은 퇴직금과 함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딸의 선언

평화로운 일상 속, 첫째 딸의 사춘기와 함께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목적 지향적인 아이는 어느 날 선언했다.

"엄마, 나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

나는 행동파 엄마다. 그래서 나는 동네를 샅샅이 뒤지며 아이의 재능을 키워줄 사람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우연처럼, 인연처럼, 지금의 김 작가를 알게 되었고, 아이 과외를 어떻게 할지 함께 고민하기 위해 늦은 밤 동네 정자 벤치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그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를 허투루 듣지 않고 귀 기울이는 모습. 마치 눈으로 글을 써 내려가듯 나를 관찰하는 시선. 그때 나는 생각했다.

'작가라서 그런가, 관찰력이 장난 아니구나.'

'정말 신기하고 귀하다.'

정말이지, 그렇게 내 말에 집중해 주는 사람을 만난 게 얼마 만인가 싶었다. 십수 년의 회사 생활 동안 내 말은 그저 '보고'였고 '업무 지시'였지, 온전히 '나'의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맞추며 반응한다는 것. 그것이 이렇게 따뜻하고 설레는 일인 줄 몰랐다.

그날 늦은 밤, 딸아이가 학원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맞춰 그를 먼저 만났던 건 신의 한 수였다. 그는 이후 딸과도 유쾌한 대화를 나누었고, 딸은 곧장 그의 글짓기 교실에 입성했다. 아이는 성실하게 글을 쓰는 작업을 좋아했고, 나는 과외를 보내는 학부모로서 안도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

선생님과 학부모로 만났지만, 친근하고 사교적인 그의 매력 때문인지 만나는 횟수는 점점 늘어갔다. 작가를 만나면 기분이 좋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2~3시간은 껌처럼 지나갔고, 그때마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내가 잊고 있던 감각을 일깨웠다.

대화가 즐거울 수 있다는 것,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소모가 아니라 충전이 될 수 있다는 것. 회사에서의 대화가 늘 목적과 결과를 향해 달려갔다면, 그와의 대화는 과정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이렇듯 우리는 점점 더 친밀해졌고, 자연스럽게 나의 지난 시간들, 내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가 그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자세히, 샅샅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니, '들춰내고 파헤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마치 내 삶을 해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집요하게 물었다.

"꼭 그 일을 해야겠어?"

질릴 만큼 여러 번,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대답했다.

"응, 해야지."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왜?", "정말?", "그게 네가 원하는 거야?"

그의 질문들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었다. 그는 나의 무의식에 잠들어 있던 질문들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내 삶의 어떤 단어들이 나를 규정하는지...

날카로운 질문이 만든 균열

그 만남 이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19년간 정확하게 맞물려 돌아가던 톱니바퀴 같은 삶에 균열이 생겼다. 아니, 균열이라기보다는... 틈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그 틈 사이로 잊고 있던 꿈들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날카로운 질문들을 통해서, 나는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릴 적 무대 위에서 느꼈던 설렘,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전할 때의 짜릿함,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의 벅찬 감동.

그리고 글.

내 안에 쌓여있던 이야기들을 꺼내 문장으로 빚어내고 싶다는 갈망.

"나도 한때는 꿈이 있었는데..."

그 작가는 내게 거울을 들이댔고, 나는 그 안에서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났다.

직장맘도, 아내도, 엄마도 아닌, 그저 '나'로서의 나를.

신기하고 귀한 사람

내 삶의 깊은 곳까지 관심을 쏟아붓는 사람은, 그때껏 어디에서도 만난 적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아닌 누군가가 나를 이토록 진지하게 들여다본다는 것.

그것은 낯설었고, 때로는 불편했지만, 동시에 묘하게 설레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더욱 신기하고 귀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는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지 못했던 질문들을 대신 던져주었다. 그리고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서서히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19년 8개월의 회사 생활이 끝난 후, 나는 '주부',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지, 나는 한 번도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당연하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김 작가는, 내게 '당연함'을 의심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변화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연극동아리, 그리고 꿈의 확장

김 작가와 함께 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는 연극동아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작은 모임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연극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으로 시작했다. 전단지를 만들어 동네 곳곳에 붙이고, 매주 모여 연극 연습을 했다.

그 동아리는 점점 마을공동체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동아리 대표가 되었고, 김 작가는 메인 작가가 되었다.

우리는 노인정에서 작은 공연도 올렸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 함께 웃고 우는 순간들. 우리는 서로를 아끼고 즐겁게 활동에 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작가가 한 지자체의 어문 공모전에 당선되었다.

"우리, 더 크게 해 보자."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우리는 꿈을 더 넓게 키워가기로 했다.

김 작가와 나는 연극으로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렸다.

학부모와 선생님으로 만났던 우리는, 어느새 대표와 실장이 되어 있었다.

때까치의 등장

모든 변화의 시작점에는, 늘 그 작가의 집요한 질문과 눈빛이 있었다.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때까치처럼.

때까치: 참새목 때까치과의 육식성 새. 같은 목에 속할 뿐이지 까치와는 거리가 있는 별개의 종이다.

이전 01화프롤로그